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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렘이 이끄는 생 (詩와수필)/Like a story

6. 내가 누린 그날의 행복 /공항에서 생긴 일

by HJC 2011. 1. 9.

 

 

 

 

 

 

 

 

미니애폴리스에서 세크라멘토로 한 번에 바로 가지 못하고

시애틀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던 나는,

그곳에서 다시 알라스카 에어라인으로 바꿔 타고 세크라멘토로 내려가야 합니다.

 

거의 60대 할머니로 보이는 스튜어디스들이 반갑게 맞아주는 알라스카 에어라인은

처음 타보는 거라 괜히 낯선 느낌이었지만,

이것저것을 적느라 핸드백 속에 있던 작은 수첩을 다 사용해 자리에 앉자마자 메모지 좀 달라고 부탁하자

상냥하게 웃으며 바로 가져다줘 마음을 편하게 해줍니다.

 

 

 



 

메모지는 물론 냅킨에까지 알라스카 에어라인의 이름을 박아놓은 이 비행기에서는,

대학 교수 라는 남자가 오른쪽, 아주 멋진 젊은 여자가 내 왼쪽에 앉아 함께 가게  되었는데,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은 폼인가 싶을 정도로 모자란 잠을 청하려는 내게 자꾸 말을 시킵니다.

한 두어 번 받아주다 짜증나 거의 노골적인 표정을 짓는데도 알아 듣는 기색이 없습니다.

시간을 보니 도착지까지 불과 30분밖에 남질 않았습니다.

불쑥 억울하고, 끝까지 운이 따라주질 않는다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든 눈을 붙여야 겠다며

아예 질끈 눈을 감고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한국어로 말합니다.

30분 만이라도 잠 좀 자자, 제발 .... 






세크라멘토 공항에는 큰애가 마중을 나왔습니다.

짐을 찾기 위해 기다려도 다른 때는 쫄랑쫄랑 잘도 나오던 피기 백이

또다시 트레일이 멈추고 끝을 알리는 벨 소리와 함께 

출구가 닫히도록 또 감감 무소식입니다.

뉴왁에서 이륙 전 보낸 짐이 도착도 하지 않은 채 

아직 직성이 풀리지 않았는지 마지막 트러블을 내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뭐야 또, 이번엔...

 

별 재간 없이 당하게 되는 연이은 상황에 어처구니 없어 하는데,저 멀리에서 공항 직원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곧장 나를 향해 걸어오는 겁니다.

 

어? 삼순이닷!

 

아이가 나지막하게 외치며 마주치기 싫다는 듯 얼른 등을 돌려 나를 향합니다.  도대체 왜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하는가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이 여행 바로 전인 2주 전에는 동부 필라델피아에 다녀왔습니다.

그때 이 공항에서 어떤 직원이 조용하게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었습니다.

이유인 즉, 누구에게도 물을 사람이 없어서라며

자신의 궁금증을 좀 풀어달라며 간절하게(?) 부탁하는 겁니다.

 

자신의 가족은 인터내셔널 채널에서 한국 드라마를 매일매일 재미있게 보고 있다며

지금 방영되고 있는 삼순이라는 드라마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을 좀 물어보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그 질문이 하도 어이없어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너무도 진지한 표정에 그만 그러겠다고 했고

공항 내로 들어가기 전 이야기가 생각보다 훨씬 길어졌기에,

그때 아이가 기다리느라 질렸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질문은 자신이 듣기에는 삼순이 이름은 매우 부드러워 좋게 느껴지는데 

왜 한국에서는 그 이름이 다른 사람에게 창피해 할 것인가 부터 시작해, 

별걸 다 궁금해 하는 남자는 마치 앓던 이라도 빼려는 듯 계속 질문 했습니다.

들어가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 별로 할 일도 없던 터라,

잘 모르는 이들 사이에선 대강도 전문가처럼 보인다고 

그의 질문에 대해 이리저리 대답을 아는 줄거리에 맞춰가면서 해줬는데,

바로 그 남자가 좀 전 다시 날 발견하고는 다가오는 걸 봤으니 당연히 아이가 피하려 할 밖에요.

이번엔 무슨 드라마에 대한 질문을 하려나 했는데

내게 다가온 목적은, 전혀 짐작과는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네 이름이 화우 아니었니?  맞지?  그래 그래... 널 줄 알았다.

이 아시안 여자가 누굴까 하다 너 일 것 같다던 내 짐작이 맞았던 거야단지 네가 금세 다시 동부엘 갔었나 확실하지 않았지.

네 이름표 달린 짐이 달랑 어제 혼자 먼저 도착했어. 아무리 찾아도 명단에 네 이름은 없고..

조사해 보니 오늘 아침 비행기로 도착 예정이더군. 그래 짐을 홀드하고 있었는데 아까 도착한 비행기로도 넌 오지 않은 거야,

그런데 어떻게 알라스카 에어라인으로 왔지? 분명 네 명단이 떴었는데 나중에 보니 탑승자 명단에서는 사라졌더라고?

그래서 난 사람들 중에 네가 있나 눈 여겨 보고 있었던 거야. 자, 아무튼 네 짐은 내가 따로 저곳에 맡아두고 있으니 사인하고 가져가면 되.

아, 그랬었구나. 네 덕에 짐을 고생없이 바로 찾을 수 있게 되어 고마워. 난 순간 내 짐이 아예 동부에서 오지 못한 것은 아닐까 걱정 했거든.

잠도 모자라고 피곤해. 얼른 집에 가서 자야겠어. 땡큐! 바이~

 

사무실에서 짐을 찾아서 나오며 이제 드디어 집에 가는구나 생각했는데. ..

 

 

 

 

 




 

 

 

아, 잠깐만, 화우, 한 가지 물어두 되니? 요즘 티비에서는 그 한국 드라마 삼순이 끝나고 풀 하우스라는 드라마를 하구 있거든? 그런데 그 '비'라는 가수로 나오는 남자는 왜 그리 노래를 못 하는데 가수인 거니? 그리고 상대 남자가 더 잘 생겼던데 왜 여자 주인공 두 명 모두 '비'라는 남자만 좋아하는 거니?

 

으으......이 삼순앗~! 가다말고 그날처럼 그에게 다시 붙잡힌 난, 가방 찾아준 고마움의 표시로라도 설명을 해줘야 할 의무가 생긴 셈이라 피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건 말야. 비가 정말 노랠 못해서가 아니구 거기서는 그렇게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야. 정말로 부르면 어셔와 비슷한 창법이고, 알 켈리의 노래를 부르면 더 끝내준다?...춤은 또 어떻구..상상도 못하게 멋져. 그리구 네 눈엔 다른 남자가 멋지게 보이는지는 몰라도 '비'는 아시안으로는 유일하게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공연을 한 최고 멋진 가수라구! 그거 몰랐지? 얼마 가지 않아 아시아 뿐 아닌,조만간 미국에서도 그를 인정하게 될거야.

 

간단히 설명을 해주고 돌아서려하자 그가 너무 빨리 가버리는 내게 실망하는 듯한 표정이 역력합니다.잠시 망설이던 난, 다시 고개를 돌려 말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너,  '한류'라는 게 뭔 줄 아니?  에, 또 그건 말야 ......$%#@#&%$#........

 

대낮 햇살이 내려쬐는 공항 유리창의 반사만으로는 아이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끌고가던 가방 놓고 멈춰 서서 양 손 허리에 얹은 채 천장 바라보는 포즈로 미루어보아, 벌어지고 있는 상황 속 빨간색 셔츠와 엄마의 수다가 상.당.히. 못마땅한 모양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화요일 도착한  뒤 각자가 그들 자신의 일들로 바빠 저녁을 같이 할 시간이 없을 것이 분명했고, 고마워서 한 인사이기는 해도 정말 내가 전화를 해도 별 뾰족할 무엇도 없을 것을 알기에, 난 폴과 다이안에게 그들만의 시간을 주려 연락 하지 않았습니다.

 

나와는 만나지 않아도 두 사람은 각자의 시간을 쪼개 만날 확률이 높고,

어차피 금요일 저녁 같은 비행기로 뉴왁으로 돌아가게 되어있으니

출장 중에 만날 수 있든 없든 비행기 그리고 동부로 돌아간 후

그들의 만남이 계속되리란 것은 정해진 일 아닐까 해서입니다.

그들을 같은 비행기로 갈 수 있게 해줄 수있어서 좋았고

함께 갈 수 있다는 사실이 그토록 그들에게 기쁨인 것을 본 것만으로도

난 그날 내가 누렸어야 할  행복을 누린 거라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