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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렘이 이끄는 생 (詩와수필)/Like a story

4."그냥 자는 건 시시하다."/ 공항에서 생긴 일.

by HJC 2011. 1. 3.

 

 

호텔은 예전에 묵었던 어느 호텔보다도 웅장하고 멋진 곳이었습니다. 

 

시설과 크기, 호텔 내부부터가 달라보였는데, 프런트에는 매니저까지 나와

 

한밤의 투숙객들을 반갑게 맞이해 줍니다.

 

우리는 내일 새벽 5시에 호텔 앞에 리무진을 대기시켜놓게 하고

 

각자의 방 키를 받아 올라가려 엘리베이터 있는 쪽으로 가려는데,

 

헤이~

 

누군가가 Bar에서 나오며 우리를 향해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돌아보니 바로 그 키가 185도 훨 넘음직한 머리꼭대기 부터 발끝까지

 

한국인이 분명한데 한국인이 아니던, 뉴왁에서 출발 전

 

폴과 함께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던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도 같이 퍼스트 클래스를 타고 왔으나 먼저 나갔기에 보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너두 세크라멘토 가는 비행기 놓쳤는데 우리와 함께 오지 어떻게 이리로 혼자 온 거야?

 

폴이 그렇게 묻는데 뒤에서 누군가 오더니 그 청년에게 몇 마디 하더니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사라집니다.

 

분위기로 미루어보자면 적어도 그 청년이 우리와 같은 케이스로 이 호텔에 오게 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냐. 난 여기가 도착지야. 바에서 비서와 간단히 한 잔 하고 나오는 길이지.

 

그런 너희들은 비행기를 놓쳐서 이리로 오게 된 거야? 그것 재미있군. 이 멋진 인연을 위해

 

한 잔들 하지 않겠어? 그냥 자는 것은 시시하다.... 안 그래?

 

 

그렇지 않아도 우리 셋은 은연 중 비행기 숙박권 뒤에 붙은 스낵쿠폰으로

 

와인이나 한 잔씩 하려던 참이었기에 우리는 데이비드라는 이 젊은 친구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는데,

 

금세 다시 내려오기로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자 폴이  말합니다.

 

 

스낵 쿠폰을 쓴다고 했어도 니들도 알잖아. 그것 가지고는 한 잔도 사먹지 못할 거라는 거.

 

오늘밤 내려가서 먹게 되는 너희 둘 것은 내가 낸다. 알았지? 병아리가 사게 하지는 않을 거야.

 

 

그런 폴에게 다이안이 고맙다며 가볍게 포옹하는 걸 보던 내가 빙그레 웃자,

 

폴은 꼭 내려와야 한다며 내게도 확인을 받습니다.

 

공항 스테이션 앞에서의 급한 성격도 있지만 동시에 참 정도 많은 듯 합니다.

 

 

 

하기야 무슨 문제겠습니까…….

 

피곤해서 먼저 자고 싶으니 그들끼리 마시라고 할 생각도 있었지만,

 

아마도 인생은 이런 것인지도 모릅니다.

 

 

 

길 잘못 들어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려도

 

흔들리는 차창 밖으로 도시에서는 만나볼 수 없던 대자연을 만나기도 하듯,

 

예상치 못한 곳에 좌초된 널빤지가 표류하다 닿게 된 곳이어도

 

어쩌면, 멀쩡한 배들을 묶어 놓고 밤새 떨게 하던 바람 심하고 후미진 정박지 보다는 

 

더 푸근하고 안전한 곳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가방만 던져둔 채 5분 뒤에 아래 층 Bar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습니다.

 

몇 백 불 짜리 방일까요..매우 잘 정돈 되어 있는 모습이 두세 시간 자고 일어나  나오기 아까울 정도입니다.

 

대각선으로 어깨에 메고 있던 숄더백도 내려놓지 않은 채

 

마치 무슨 증거 남기듯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찍습니다.

 

 

 

마음껏 행복했던 며칠간의 워싱턴, 볼티모어, 뉴욕 맨해튼을 돌아본 여행 뒤끝이라 많이 피곤하지만, 

 

마치 방전되고 있던 전지가 동시에 다른 쪽으로부터 충전 되어가듯

 

내게 덤으로 내려준, 이 휴가 같은 상황의 밤을 기념(?)하고 싶어졌습니다.

 

 

 

 

 

 

 

 

 

 

 

Bar로 내려가려 방문을 여는데 복도 끝에 폴과 다이안이 나란히 걸어 내려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난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금 기다렸다 다른 엘리베이터로 내려가

 

이미 자릴 잡고 앉아 기다리던 데이비드 옆에 앉았습니다.

 

 

 

큰 아이보다 두어 살 정도 더 들었을 것으로 보이는 이 청년은 대학을 갓 졸업한 듯 젊지만,

 

아까 저보다 나이 많은 이가 깊이 허리굽혀 인사하는 것을 봐서인지

 

무언가 중요한 책임을 맡은 사업가처럼도 보입니다.

 

사실 100% 한국인 같지만 그런 질문은 생략하기로 합니다.

 

 

 

우리는 칵테일을 한 잔 씩 나누며 각자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폴과 다이안은 마치 피하고 싶던 무엇으로부터 해방이기라도 된듯

 

서로의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합니다

 

그 상황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척 간단히 한 잔 마신 난,

 

4시간 후인 4시 55분 로비에서 만나자며 일어섰습니다.

 

 

 

 

 

 

 

샤워 후 갈아입을 옷도 없어 그대로 잠시 눈만 붙이자며 누었지만,

 

잠이 오지 않아 오늘 일어난 이런 저런 것들을 생각하는데,

 

호텔로 오는 밤늦은 시각, 비행기를 놓치고 탄 호텔행 리무진 버스 안에서의

 

폴, 다이안과 함께 철모르는 애들처럼 떠들고 웃던 모습이 떠오르고

 

내 앞에서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걸어가던 호텔 복도에서의

 

폴과 다이안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던 분위기도 오버랩 되어 옵니다.

 

 

 

데이비드와 내가 있는데도 서로 사생활에 대해 끝내야 할 숙제를 하듯 풀어내던

 

그들의 서로에 대한 감정이 어떤지를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한...

 

인연은,

 

똑같은 가방을 들고 옆줄에 서있었던 뉴왁 공항에서 이미 시작되었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