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주문하려고 서 있는데, 바로 앞에 있는 남자의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차례가 되어 커피를 받아들고 돌아서자 좀 전의 그가 제게,
어딜 가는데 아직 이곳에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는 너는 하고 물으니, 글쎄 싸크라멘토로 간다고 하네요.
저도 그렇다고 대답하자 별것에 다 반가와하며
그와 난, 찬밥 신세의 동지를 만난 것에 서로 위로 받습니다.
무슨 사정인지 알지도 못한 상태로 그저 시간만 보내다,
1시간 반이 지나서야 겨우 탑승이 시작되었는데,
오래 기다리느라 지루하고 초조했던 우리는 마치 훈련 잘된 군인들처럼
민첩한 동작으로 한눈도 팔지 않고 기내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싯벨트까지 착용하고 앉아 이륙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다시 그 상태로 45분이 넘도록 기다리게 합니다.
종이를 만들러 종이공장에라도 갔는지
오케이 싸인 받으러 간 서류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랍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얼마 전 필라델피아를 가려 할 때
도착지가 폭풍 영향권에 들어 있는 까닭에 동부행 비행기가 전부 결항되어
무려 7시간을 미니아 폴리스 공항에서 기다렸었습니다.
불과 2주 전 일이어서인지 아직 지루하던 느낌 그대로인 지라,
출발 전부터 다시 그곳을 거쳐 간다는 스케줄에 괜히 마음이 놓이질 않았었습니다,
분명히 경유지 탓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생트집 잡듯 그랬습니다.
게다가 지금 바로 출발한다고 해도 싸크라멘토 행 다음 비행기 시간에
맞츠어 더착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데.
퍼스트 클래스의 의자 작동이 조금 되지 않는다고 그것을 고치느라 두 시간 이상 지연한 것도 모자라
서류 싸인 받은 것이 도착하지 않아서라며 우리를 기다리게 하는 처사는 더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의자든 다른 부분에 조금이라도 기체 내에 이상이 있으면 출발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인 비행사 측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지금처럼 기계 고장이 아니라면 왜 좀 융통성 있게 움직이는 방법을 모색하지 않고
이 많은 사람에게 불편을 겪게 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못마땅한 기분은 미니아 폴리스에 도착하면 갈아타야 할 비행기의 이륙 시간이 가까워질 수록 더해갑니다.
드디어 미니아폴리스 공항에 도착하여 내려서는데 시간을 확인해보니,
갈아타야 할 비행기의 이륙이 5분 밖에 남질 않았습니다.
전에 탔던 항공사와 같은 항공사 비행기라서내려서도
싸크라멘토 갈아타는 비행기가 있는 게이트까지 무려 10분 이상 걸어야 할 만큼 거리가 멀던 것을 기억해 내며
저 혼자 한숨을 쉽니다.
그때 비행기가 주차를 완전히 하지 않고 무슨 사정인지 다른 곳에 세워야 한다며 다시 움직입니다.
그러더니 싸크라멘토 출발행 비행기가 서 있는 것이 보이는 옆 게이트로 가서 멈추는 거였습니다.
순간, 그럼. 그렇지. 그래야지. 고개를 끄덕이며 분명히 그들의 마지막 배려에 틀림없어 보이는 대처에,
지금까지 행동 굼드는 것에 답답해하던 섭섭함이 조금 누그러지는 듯합니다.
그런데 비행기가 완전히 멈춘 후 사람들이 일어나 짐을 들고 내리려는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졋습니다.
어떻게된 것인지 싸크라멘토 행 비행기가 이륙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를 비롯해 그곳을 가려던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믿었던 바로 그 싸크라멘토 행 비행기가 말입니다.
- 어? 어?……뭐야...도대체 저 비행기가 왜, 왜 움직이는거야?
이미 몇 시간 전 비행기 시간을 놓쳐 공항에서 새우잠을 자고
다음 날 첫 비행기를 타야 한다던 캐나다가 최종 목적지인 제 옆에 앉았던 남자도 제가 탈 비행기임을 알고 있었기에,
놀라서 외치는 소리에 믿을 수없는 일이라며 저보다 더 큰소리로 외칩니다.
- 나야 이미 마지막 비행기도 놓쳐서 떠나지 못하지만, 넌 갈 수 있기를 바랐어. 그런데
이 비행기 도착하는 것 보며 떠나는 건, 무슨 경우라니?
너무했다. 나가서 곧장 들어가면 5분도 걸리지 않을 텐데 말야…….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약이라도 올리 듯 윙윙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비행기를 보며
더는 조바심을 내며 빨리 나가야 할 이유가 없어진 저는, 터벅터벅 비행기를 빠져나갑니다
공항 안으로 들어서자 같은 앞서 내린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스테이션 데스크에 수십 개의 봉투가 나열되어 있어 다가가서 보니
탑승자들의 이름이 적힌 변경된 스케줄의 새 티켓이었습니다.
그때 승무원이 큰 소리로 말합니다.
- 여러분은 모두 오늘 출발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곳에 마련해 놓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티켓을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뭐, 갈 수 없다고? 아니 그럼 어떻게 하라고? 설마 공항에서 자라는 거? 말두 안돼…….
타기 전 부터 왠지 불안 하더라니... 혼자 이런저런 징크스 끌어다 대며 투덜거리는데,
다른 쪽에서 다투는 듯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아는 얼굴입니다.
스타벅스에서 같이 커피를 마셨던 폴과 뉴왁에서 체크인 할 때
그와 똑같은 가방을 들고 서 있어 바라봤었던 바로 그녀였습니다.
폴도 세크라멘토로 갈 것이기에 저는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말했습니다.
- 이게 무슨 일이라니? 이럴 수 있는 거라 생각하니?
- 어? 너구나.
- 난 세크라멘토 가는데, 넌 어디 가니?
- 나두 사크라멘토 행이야. 그리고 폴도.
여자가 폴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 폴이 세크라멘토 가는 것은 아까 커피 마실 때 들었어.
- 그렇구나. 이 비행기에 탄 사람 중에 세크라멘토로 가는 사람들이
우리 포함해서 한 10명쯤 되는 것 같더라구. 그런데 이게 무슨 경우라니? 우리 도착하는 것 빤히 봤을 텐데 떠나다니.
자기네들끼리 연락을 취했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잖아. 빈번히 이륙을 늦게 하다시피 하면서
오늘은 마음먹고 정시에 출발야?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군! 나, 다시는 이 비행사 이용하지 않을 거야.
다이안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는 우리가 탔던 비행기가 도착한 것을 보고도 이륙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도무지 승객에 대한 배려가 없는 처사였다며 흥분합니다.
바로 그때 누군가의 언성을 높이는 소리에 들아 보니, 이번엔 폴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 난 너희 비행기의 퍼스트 클래스 승객이다.
조금만 승객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곤란한 일에 직면하지 않도록 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당신들이 우리들의 스케줄을 새로 만드는 작업보다 간단한 일이었다고 본다.
그러니 지금 당장 나를 위해 내가 세크라멘토에 갈 수 있도록 다른 경로를 찾아주기 바란다.
난, 내일 아침 9시에 여섯 개 회사 사장단들과의 중요한 미팅이 있는 사람이고,
나를 만나러 모이는 회의인데 내가 빠진다면, 아무것도 성사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차를 렌트해 두세 시간을 달려야 한다고 해도
난, 오늘 밤에 꼭 세크라멘토에 도착해야만 한다.
너희는 도대체 이 미팅이 얼마짜리인줄이나 아느냐....
만약 이 트러블로 인해 내 미팅이 엉망 되는 일 생기면, 너희는 절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지금까지 참았던 것이 한계에 달한 듯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폴의 외침을 듣다보니,
저와 같이 여행 하는 이가 아닌 비지니스 때문에 퍼스트 클래스를 타고 바삐 다니는
다이안이나 폴같은 사람들의 입장을 새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폴은 계속 직원 붙잡고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해결책이 나올 수 없음을 느꼈는지
갑자기 다 필요 없으니 당장 스테이션 매니저를 만나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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