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저편을 향해 함께 걷는다면...
새의 노래를 들으며 물 흐르는 소리에도 귀 기울여보지만
자박자박 자신이 걷는 소리 말고는 들을 수 없는 것이 좀 아쉽다
하지만 눈앞에 보고도 들리지 않는 소리는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하는 무엇과 전혀 볼 수 없어도 느끼는 무엇에 대한
그 경계의 느낌이 일치하기 전에는 무소유의 소유를 느낄 수 없을 것이기에,
들리지 않는 우주의 소리를 가지고 내 안에 볼 수 없는 천공의 무늬를 들여놓는 일이란,
그저 뒤뜰에 앉아 그날 저녁 밥상에 올려놓을 상추 한 포기 뽑으며
흙의 냄새를 읽는 것으로부터,
그 시작도 완성도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리 되려면 우선,
들리는 소리 보이는 것만도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느낄 줄 알아야겠고.
드디어 허난설헌님의 생가에서 담 너머 먼 시선으로 잡히던
하늘을 수놓은 듯한 벚꽃의 향기, 먼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혹여 바람이라도 불었다면, 향기가 시선보다 먼저 도착했으려나...
참 조용하고 인적조차 드문 만개한 벚꽂만이 가득한 숲.
그게 그런 것 같다.
한국에 살지 않았던 난 어쩌면 늘 그랬었지 모르지만
자신이 사는 곳 어디도 조금만 둘러보면
아름다운 곳이 참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굳이 계획 세우고 멀리 가지않고 자신이 사는 곳인 그 고장
혹은 그 마을에서만도 각각 그들만의 아름다움은 있게 마련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렇게 숲 우거진 곳이 많아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길가에 이리도 예쁜 꽃들이 행렬처럼 피어있기 시작한 것은,
더듬어봐도 정말 모르겠을 기억이라며
지나치며 인사하듯 꽃들과 몇 마디 주고 받는다.
꽃 한 송이 한 송이는 각기 다른 표정을 가지고 있다.
노래를 하기도 환하게 웃기도
일어나 춤을 추기도 내 말에 끄덕이기도
고개를 숙이기도 커다란 미소 머금기도 해,
한 종류의 꽃을 표현하는 데만도
다양한 표정의을 묘사하기란 부족하지 싶다.
언젠가는 개나리의 노란 눈망울이
꾸지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만발한 산수유가 수다스랍다며 적은 시도 있는데
이날의 벚꽃은 그 표정이 너무도 다양하고
모두 동시에 내게 말 걸어오는 듯 해
조용하게만 보이던 숲속에 홀로 남는 일이
마치 무대에서 벚꽃들의 환호를 받는 듯 벅찼었다.
고개 돌려 바라본 작은 줄기의 시내는 고즈넉했다.
그 시내만 담아도 그 안에는 이름 모를 물풀과 억새 사이
낮은 구름으로 가려진 하늘이 숨어있기도 했다.
햇살 반짝이는 날엔 그들도 따라 하늘 오르 듯 반짝이겠으나,
꽃의 위로만으로는 모자른가, 그저 흐릿한 하늘을 품은 채 숨죽이 듯 침묵하고 있었다.
그래 그들의 호흡을 들을 수 없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허난설헌 님도 이곳을 거닐었을 것이다.
그러며 하늘 향해 기지개를 펴는듯한나무들과
그 아래 가지런한 벚꽃나무의 말 건네오는 소리 들으셨을 것이다.
모두 잠든 깊은 밤 개울가에 나가 앉아
달빛 출렁이다 혼자 부서지기도 하는 모습 바라보자니
반딧불 빛 사위어 갈 즈음의 풀벌레 소리에 문득 쓸쓸해지셨으려나..
꼭 꽃이 아니어도 눈 발이 켜켜이 쌓이는 겨울엔
옷깃 여미며 발으로 돌아와
가슴에 담아온 눈빛 모아
개울물과 벚꽃 향기 그리움으로 띄우곤 하셨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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