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설렘이 이끄는 생 (詩와수필)/Like everyday life 1

밤 아홉 시에서 자정 사이 / 화우

by HJC 2010. 1. 3.

 

 

 

밤 아홉 시에서 자정 사이  / 화우




하나,

하나,이제야 좀 열이 내리는지 몸이 더워 오지만

하얀 스웨터를 벗으려다. 키보드 두드릴 수 있도록

손목에서 팔꿈치 부분까지만 걷어 올린다.

덥다고 벗어던졌다 다시 열 올라 눕게 되는 미련을 떨지 않기 위해서다.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뜨거워

괜스레 창 밖 풍경에 눈조차 돌리지 못했던 요 며칠.

공급 되지 않았던 것은 목이 부어 잘 먹지 못한 음식만은 아닌,

자신이 초췌하다 못해 초라한 것은 정신적 빈곤이 가중된 탓이리라

 

아직도 기침은  앓은 만큼 깨끗하게 그쳐주질 않아 답답하다.

자주는 아니어도 몰두라는 것이 있을 적다른 이들보다 그 정도가 심한 편인 난,

그것이 글이던 그림이던 정신과 마음을 작업에 집중하는 것으로 나타날 때는 괜찮아도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소모라는 아름답지 못한 미명 하에 

이렇듯 자신의 건강을  갉아먹는 것에 속수무책이 된다.  

 

 

둘,

 

이십 대 언제쯤이었을까. 

보름 정도 전혀 음성이 나오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무슨 충격을 받아 그런 것이 아닌 사람에 크게 실망해서라고 밖에

별달리 추측해볼 거리가 없이 과연 그게 말을 못하게 될 정도로

내게 충격이긴 했던가 싶지만 어디도 아픈 구석 없이 멀쩡하게 말문이 막혀버렸었다.

.

설마 그것이 기가 막힌 상태라는 것과 같은 것일까.

마음을 상하게 된 그 어떤 이유보다는 한심해진 자신이 더 못마땅해 

미련스럽게 며칠 몰두한 결과가 결국 음성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절절리 마음이 아팠다면 몸져누워야 했을 것이나

상하기만 해서인가 전혀 아픈 구석이 없이 출근조차 다름없이 한 나는

내 자리로 전화가 와도 받지를 못해

한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불편을 겪게 했다. 

요즘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침 한 번 맞으면 혈이 뚫려 회복 된다는 말도 듣겠지만,

25여 년 전인 그 당시는 그런 증세에 대해 아는 것도 요령도 없었는지라,

그저 이상한 일도 다 있다며 믿을 수 없다는 동료들로 하여금

정말인지 아닌지 테스트라며  뒤에서 놀라게 하려는 행동 등

말문을 열게 하겠다며 이런저런 수단을 써보게도 했다.

결국, 다른 이들보다 예민한 탓으로 그 원인을 돌리는 수밖에 없었던...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난 

남이 보면 고통이요, 자신에겐 어처구니없는 일에

바보처럼 머리 따로. 몸 따로 반응하는 것이 한심해

특별한 치료도 받지 않고 그저 지켜봤던 것 같다.  

굳이 해야 할 말을 못해서도 아닌 막혀버린 때문이라며 

그저 저 혼자 내버려두면 어느 날 다시 저 혼자 알아서 음성이 나올 거라며

 

흡사 창문 잘못 열다 들어온 먼지바람을 한 가득 마셔

잠시 숨 막힌 셈 치자며 기다리며 2주가 지나던 어느 날  

예상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음성은 다시 나오기 시작했고

태연하게 동료들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 놀라게 했다.

 

이런 일이라면 남이 볼 때야 답답했건 어쨌건 

본인에게는 아무 아픈 곳 없으니 다행인 셈인데…….

정말 마음 아픈 일을 겪었을 경우에는 그 아픔 그대로 받아

흠씬 제대로 몸져누워야만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

창문 열다 먼지 뒤집어 쓰게 된 옴 붙은 재수로 칠 작은 불운과는 다른,

오래도록 소모로 전환될 필요 없는 에너지는 태워서 깨끗이 정리해야

다시 정신 들고 씩씩하게 살아갈 거라고 본다.

 

아픔도 사랑도 아닌 어중간한 감정은 낭비며

지저분한 흔적만을 남기게 되는 비 퍼붓다만 시커먼 구름 가득한 하늘이거나

흠씬 눈 내리고도 만족 못한 채 오히려 어두워진 길에

음울한 겨울표정 같은 석연치못한 미련만 남기 마련이다.

 

 

셋.

 

때때로, 바다에서 줍곤 하던 예쁜 자갈들을 떠올린다.

모난 돌을 찾아볼 수 없는 그것들을 쥐고 만지다 보면

손 안에서 마음으로 그 느낌이 전달 될 정도의 딱딱함 속의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그것은 그들이 일구어낸 것 아닌 장구한 세월의 물결이 스쳐서임을 생각하면

되도록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거나 얽매이지 않은 채 지낼

비로소 우리는 인간만이 키우고 줄 수 있는 신뢰의 순리를 깨달을 수 있으리라. 

 

하여, 무엇이든 나를 강제로 가두려는 것에 원망을 두지 않고

순수하게 넘길 수 있는 자신을 기특하게 여겨야할 용서의 마음이란,

상대에 대한 자비나 인내심의 차원을 떠나

더는 자신을 흐트러지거나 부수도록 허락하지 않겠다는

절망으로부터 자신을 구하기 위한 절절한 시도인지도 모른다.

 

 

넷,  

 

이젠 그쳤을까…….비가 좀 그치긴 했을까…….

창을 열며 후우- 가슴 가득 찬 공기를 들이마신다,

아스팔트 위를 달리던 차들의 꼬리조차 지워진지 오래인듯

모두 어디론가 스며들어 호흡조차 하지 않는 도시의 거리는, 텅 비었다.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나무 밑동에

쌓인 채 바라지 않고 원색 간직하던 고마운 나뭇잎에서조차

억지로 가을을 앗아간 유난히 더 겨울타령 하는 밤이다.착각일까 싶게

볼륨 낮게 줄여진 라디오에서 흐르는 음악이

고요하다 못해 적막한 한해의 마지막 순간들을 밀어내고 있다.

 

겨우 내리는가 싶더니 다시 뜨거운 녹차가 마시고 싶을 만큼

간절한 보고픔은 온몸을 뜨거움으로 달구기 시작한다.

매번 순리대로 살다 가는 거라면서도 그 순리라는 것때문에

자신의 삶을 방치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는 눈곱만큼의 여유도 없는 못난이.

그 순리를 제대로 이해하며 헤쳐 나갈 수 있는 순한 용기가 앞서는

새해가 되기를 다짐해 보는, 마지막 날의 밤 아홉 시에서 자정 사이

  



 - 20051231 북부 켈리포니아에서 




 


                                         Copyrightⓒ화우의 세상풍경


 

 

 

 

 

 

 

 
이 글을 처음 적은 것은 작년 마지막 날,
오랜만에 하늘 뚫어진 듯 비가 내리자 난,
그 빗줄기가 된 듯 닿는 대로 흐르는 대로 따르며
한참을 하는 일 없이 두 손 놓고 시간을 보냈다.
그러며 꺼내 읽는 이 글 속에 한동안 앉아 있다.
무엇으로든 어째서든 난 요즈음 좀 아팠으며, 인제 그만 털고 일어나련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했던 말에 다시 귀기울이며

20061231 Davis에서 화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