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정자동 카페 거리
회복된다는 것은,
웃겠지만, 그랬다. 정말.
있잖니, 왜
중학교 때 첫째 시간만 끝나도 도시락 다 까먹고
수업 시간에 아무 생각 없이 턱 괴고 칠판만 바라보다,
한 순간에 팔꿈치 미끄러지거나 볼펜 떨어뜨리면서 졸던 순간들,
그러다 둘째 수업 종료 종 울리고 선생님 나가시자마자
책상에 이마 찧듯 엎어져 그대로 잠들고 말던 때처럼,
오늘 처음
그때도 해보지 않았던 것을 이 나이, 그것도 점심 먹다 말고
그대로 엎어져 자고 싶다 느낄 만큼 대책 없던 졸음이란..
딱, 학창시절의 그거더라.
어릴 적 동생 떼어놓고 도망갔던 오빠
눈물 콧물 짜도록 울다가도 막대사탕 한 개 입에 물려주면
아직 눈물 흐르는데도 입 안으로는 사탕을 굴리던.
혹은 평소 뜨거워 조심 하던 커피 한 모금 무심코 입에 무는 순간
아차. 하면서도 혀 데이고 마는 어쩔 수 없음처럼,
점심에 전라도 감태라는 것을 한 젓가락 씩 입에 넣으면서도
하품 나오고 졸려 그만 기절하겠던 나른함이란...
설마 엊저녁 간만에 마신 와인 몇 잔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그 때문에 이리 졸린 거라면
다행히 이젠 어느 정도 컨디션도 회복 되었으니
몇 잔 정도는 마셔도 되는 거라고 손 들어주는 것 같은데...
이탈리안 레스토랑 안에서도 조용한 자리를 찾아 앉다 보니
구석이긴 해도 바로 뒤쪽으로 나갈 수 있게 되어 있는 또 다른 출구의 앞이였어.
즉, 정문은 아니어도 또 다른 통로의 앞이기도 한 곳이더란 말이지.
같이 간 친구가 다른 자리로 갈 것을 제안했지만,
난 내가 경치 좋은 육지뿐 아닌 바다로도 통하는 곳인
남쪽 끝에 자리 잡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유리창 밖 카페테라스에 마련된 테이블 위
양철우산같이 생긴 히터의 뜨거운 열선조차 남쪽 바닷가의 햇살이
곱게 그네들 머리 위로 내리는 거라 여기면서 말이야.
왜 난, 후추는 갈지 않은 알갱이 그대로가 더 좋은지 몰라.
발사믹 식초로 버무려진 연어 샐러드 위에 뿌려져있는 후추 알갱이를 건드리던 친구가 말했어.
그 말을 들으며 앞으로 포크로 까만 알갱이를 돌돌 굴려주다 보니
자연이든 인간이든 생김새 모두 달라도 이 세상 걸어가는 길마다
사랑 없이 살 수 있는 것 어디 있겠나...뜬금없이 그런 생각도 하게되고.
어쩌면 지난 계절 마른 바람에 흔들려 떨어진 씨앗들이 여태 공중을 배회하다
대지 위 가장 필요한 이 앞으로 떨어져 앉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며,
분분한 기다림으로 옴씰거리던 씨앗이 떨어져 내렸으니
오는 봄엔 저 친구 가슴에 싹 터 줄지도 모른다며
막연하게 그런 생각하던 나도 그 순간 그것을 이미 가슴에 품었던 것 같아.
그래 친구는 친구대로, 나는 나대로,
이 씨앗 덕에 새로운 인연으로 보다 환한 삶이되면 좋겠다면서 말이야.
대리 운전 불러 돌아가야 할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인데도 사람들은 카페로 계속 들어오는데,
과연 저들은 가진 자유 다 사용하면 어떤 소망 품을지.
때론 아름다움에 너무 젖어 살면 누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게 시시해지진 않을지,
정말은, 그보다는 그마저 사용하지 않으면 멀쩡하기 힘든 진실 있어서인지,
그래 그것을 자신의 삶 풍요롭게 하는 조건으로 포함시킨 것인지,
난 아름다우면서도 은밀한 자유도 함께 보았다지.
어떨 때 하늘이 가장 마음에 드느냐를 묻는다면
별이 총총하다거나 한결같은 쪽빛이 아름답다... 말고는
표현 서툰 탓에 무조건 그 모든 것이 다 좋다며 대답 궁색 할 텐데,
그 밤, 비 흩뿌리던 가로등불 가지런하던 카페 앞거리는
밤하늘의 별이 온통 거리로 쏟아져 내려온 듯 아름답더라고 크게 외치고 싶더라.
이처럼, 회복된다는 것은
신기하게도 다시 모든 사물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인지도 몰라.
華雨 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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