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francisco haight St. Photo by 華雨
2. 내 그리운 벗 다케마사 상
우린 섬 주위 곳곳을 자이로 짱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 헤맸다.
사물을 분간할 수 없으리만치 어두워지고서야 다케마사 상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는데. 자꾸 그분의 우울해하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다행히 다음 날 오후 게이사츠(경찰)에게서 개를 찾았다는 연락이 왔었다며
밝은 음성으로 다케마사 상이 소식을 전해와 안심했다.
개를 묶어두지 않아도, 자전거를 아무데 세워두어도 도둑을 맞는 일이란 전혀 없는 곳인데
도대체 무슨 일이었나 여쭤보니...개가 너무 늙어서 정신이 오락가락 했던 모양이란다.
게다가 다리가 아파 잘 못쓰니 어딘가를 가다가
기억이 없어 집은 못 찾겠고 절뚝거리는 다리는 더 아파오고,
그래 돌아오질 못하고 길에 앉아있었던 모양이란다.
마치 당신이 개의 안에나 들어앉은 듯 말씀하시는 걸 들으며
12년 동안 함께 살아온 그 자이로짱을 자식처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밝은 모습으로 돌아온 다케마사상..
그러나 애석하게도 1년 후 쯤 자이로 짱은 결국 늙어서 죽었다.
그 후 기운도 없어 보이시고 사우나만 잠깐씩 들어오곤 하시는 날이 몇 주 계속 되었고
오랜만에 점심 식사를 하며다케마사상과 마주 앉아 뵈니, 그 동안 몹시 초췌해지셨음을 알 수 있었다.
건강에 무슨 문제라도 있으시냐고 여쭤보니 위에 양성 폴립이 두어 개 생겨서
떼어내는 수술을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당신은 괜찮으니 어서 많이 먹으라며이것저것 골라 접시에 놓아 주시는 거였다.
그분의 모습에 가슴이 돌덩이 얹힌 듯 걱정이 되었으나
더 이상의 말을 하면 행여 기분마저 우울해지실까 즐거운 척 식사를 끝냈다.
식사 후 무조건 그분의 요구(?)대로 아트 뮤제움 건물 꼭대기 층에 있는 영화관에서
이미 많이 알려진 마지막 황제라는 영화와는 또 다른 '최초의 황제'라는 중국 영화를 보러가기로 약속 했었는데,
미리 표를 사 놓으셨기에 어떤 영화냐고 물을 것도 없이 그냥 따라들어가야했던 나는
한국어도 영어도 아닌 중국어에 일본어 자막이 뜨는 영화를 봐야만했다.
그때는 일본어 자막을 읽으며 보느라 어려웠지만 영화의 역사적 배경이나 내용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장장 3시간 가까운 상영시간 동안 지루한 줄 모르고 집중했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오니 영화관처럼 어둠과 불빛이 환한 가운데 있으면 안압이 올라눈에 통증을 느끼게 되기에 보통 피할 수 박에 없는데, 그 때문에 속이 메스껍고 두통이 심함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내 사정인 거고.
재미있었지요, H 상?
(하나도 못 알아듣는 중국어를 들으며일어자막을 읽어내리느라 어땠니...
내가 네게 영어로 말 하는 것도 이것 못지않게 힘들단다..)하시듯,
재미있어 웃음을 못 참겟다는듯 바라보시던 다케마사 상...
하지만 난, 그 분 덕에 너무도 열심히 볼 수밖에 없었던 그 영화에 대한 감명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도도 하지 않았을 상황에 놓였어도 결국 끝내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영화.
힘은 들었지만 그만큼 뿌듯했고 오히려 정말 좋은 렛슨 이었다고 여겨져
앞으로도 두통은 제쳐놓고 그런 식의 영화를 선별해서 봐도 좋겠다는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그분과 나는 나이를 잊고 자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고,
다른 젊은 사람들 다 두고 그분과 다니는 나를 본 주위의 재일교포나 외국인과 결혼한 한국인 와이프들은
이해 할 수가 없다며 고갤 저었지만, 원래 내 성격 생겨 먹은 것이누구든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이들 시선이나 이견 같은 것은 신경쓰지 않는 편이라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평생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벗이라는 관계는 당연히 한 쪽 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닌서로 위하고 배려 해주는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만 이어지는 것일 것이었다.
살다보면 주위에 간혹 매력적인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보이고 배울 점도 많은데,
눈앞에 보고도 나이에 구애 받아 친구가 될 수 없다면
그것은 좁은 시야로 인해 소중한 것을 놓치게 되는 안타까운 일 아니겠냐는 생각에,
상대가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 모를까, 친구가 되는 일에는 난 하고싶은 대로 하는 편이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8 년간의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떠나야 할 시간이 왔고
우리는 샤부샤부를 먹으며 마지막 저녁 시간을 보냈다.
폴립을 떼어내신 후의 회복 기간 탓이라며 두부와 스프만을 조금 입에 대시고
다른 것은 전혀 들지 못하시는 걸 보고도 모르는 척 하고 있자니, 참, 속이 상했다.
일본을 떠나 다시 미국으로 들어가던 날
난, 다른 많은 이들을 제쳐놓고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안에서도 그런 다케마사 상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인 2002년 어느 날내가 살고 있던 북부 캘리포니아의 집 메일박스에
한 통의 편지가 놓였다.
일본인 발신의 모르는 이름이다.
뜯어보니, 자주 연락을 주고받지 않고 지낸다던 다케마사 상의 딸로 부터였다.
어머니의 부탁으로 당신에게 편지를 띄웁니다...로 시작한 편지는,
많은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줘서 고마웠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하셨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내가 일본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신 모양이었다.
내겐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그 힘든 몸 일으켜
나 떠나기 전 날 함께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려 나오셨던 모양이다.
아니, 앞에 앉아 미소 띤 채 식사하는 내 모습만을 바라보고 계셨던 거였다.
난 어쩌면 그리도 철없고 눈치가 없었는지
좀 좋지 않은 상태이신것 같다는 것 말고는 극심한 고통 속에 계시는 것도 몰랐다.
그렇게 조금 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음을 꿈에도 눈치채지 못한 채..
저, 떠납니다. 다시 방문 할게요. 그때까지 건강하시기예요.
내 웃는 모습을 특히 좋아하셨던 그분께 활짝 웃으며 두 팔을 벌려 꼭 안아드릴 때
왜 그 순간 잡히는 것 없이 마음이 한없이 허허로웠는지를 새삼 기억해 낸 난, 벽에 기댄 채 다케마사상 딸의 편지를 읽다 말고 주저앉아 한참을 소리도 나오지 않는 흐느낌으로 들먹였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이 글을 적으며 눈물이 나는 까닭은
가슴 속에 그분과 보냈던 아름다운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생긴 폭이 큰 강처럼,
힘든 순간과 마주치게되면,
저, 잘 살게요.
그분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용기를 내게된다.
이렇게
비단 누군가에 대한 사랑 혹은 그리움이란,
흔들 듯 여러 갈래로 마음에 기록되어지는 나를 지켜보는 그 사람의 눈빛을
평생을 두고 문득문득 기억하게 되는 일인 듯 하다.
- 사진. 글 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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