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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렘이 이끄는 생 (詩와수필)/Like everyday life 1

홍승엽의 魂을 실은 움직임/ 화우

by HJC 2009. 11. 24.

 

 

 

 

 

                                                                                       

 



 

 

사람들은 진흙으로 항아리를 빚어 만들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항아리가 아니라 그 속에 비어있는 공간이다. - 老子

 

  


 

홍승엽의 魂을 실은 움직임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비어있는 공간에 들어와 한 귀퉁이에 자릴 잡고 앉은 청년이

한동안 고개 숙인 채 호흡을 가다듬는듯 했는데 안되겠다는 듯 고갤 갸우뚱하며 홍승엽씨를 바라본다.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었다는 듯 그가 연습실 벽쪽으로 놓여있던 평행봉 위로 훌쩍 뛰어 올라가더니

높은 벽면 중앙 쯤에 걸려있던 원형 시계를 떼어 리허설 실 밖으로 가지고 나간다.

이윽고

허공 어디로부터인가 거문고의 음이 떨어져 내린다.

딩...

딩.............................................딩..........

음이 끊길 만큼이 여백 사이에 얼른 호흡을 한 번 들이쉬나 어쩌나 하는아슬아슬한 순간

다시 한 번
딩......



 

그러기를 얼마..

좀 전 벽시계가 거문고를 뜯는 청년에게 방해된다고 내려서 들고 나갔던 그가

작은 숨만으로도 흔들릴 부드러운 천으로 지어진 하얀 긴 바지만을 입은 모습으로 들어섰다.

무대란 다름 아닌 거문고를 뜯는 청년이 앉은 자리를 시작으로

자신 움직일 동작의 반경을 잡는 공간이 되겠다.


 

 

마치 하늘을 선회하는 메와 같이 무대를 말없이 몇 바퀴고 돌며
무용수는 자신의 터를 다지는 듯 했다.
갑자기 그러던 그가 호흡을 멈추 듯 정지함으로 관객의 시선을 한 곳으로 동결시킨다.
그리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보이지도 않을 만큼의 작은 동작으로
왼 팔이 움직이고 들리고 치켜들어지고, 동시에 오른 팔도 움직이고 휘어지다
두 무릎을 살짝 궆히는가 싶더니 몸도 따라 활처럼 휜다.

하지만 그의 동작은 지금 내가 적어내는 묘사보다 훨씬 더 느리다.
너무 느려서 아주 자세하게 보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듯 보일 수도 있을 만큼
조용하고 오픈된 공간의 은밀함을 키워간다.

 

딩....

 

거문고를 뜯는 청년의 기가 공연장 전체를 둥글게 감싸고 있다면

그의 호흡조차도 방해 될까 봐 숨을 죽여야 하는 춤은,

바로 앞에서 리허설을 보고 있는 무대 감독, 도예가, 화백 등

그의 공연에 동참할 다른 예술가들의 혼까지도 삽시간에 나꿔채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다.
40분 남짓한 리허설을 보는 동안 난, 그의 동작에

몇 번이고 나의 몸이 무방비로 따라 휨을 느꼈다.


거문고를 뜯다 후반부에 들어가 활을 사용해 아쟁과 같은 찰현 악기처럼
거문고에 활을 사용해 바람 가르듯 혹은 파도 소리로 시작하는 연주에는 급기야 입을 다물지 못한다. 
조명보다도 더 큰 무대의 정적을 삽시간에 변화시키는 거문고의 음률에 가슴 속이 울렁거려 어찌할 바 모르다,

그 활이 작게 움직이고 소리가 잦아들면서야 아득해지던 정신 다시 평정을 찾는다.

 

홍승엽의 혼을 실은 춤사위는 거문고와 동반하여 밀고 끌거나

혹은 언어처럼 속삭이기를 계속 했다.

저번의 춤사위 마지막 10분에 혼신을 다해 많은 움직임을 보였다던 그가

이번 리허설의 마지막 부분에는 아예 가부좌를 틀고 앉아 굳은 듯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숨죽인 채 바라보고 있던 내게는 부동으로부터 일어난 그의 환영이

무대 위를 가득 메우며 춤사위 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아니, 어쩜 그 모습은 그를 따라 움직이던 나였는지도 몰랐다.

마지막 동작으로 거의 5분을 꼼짝하지 않은 채 있던 그는,

바로 노자가 말한 항아리 안 공간을 채우고 비우는 일을 하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안무가 홍승엽

 

더 이상의 자세한 묘사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공연이니 이곳에서는 자제하도록 하겠다.



토요일 공연에 앞서 한 리허설을 끝내고 모두 함께 둘러앉아 나눈 대화에서
내가 두 사람에게서 받은 느낌이란
공연 중 느껴지던 엄청난 기운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소리 한 번 내지 못할 사람들처럼 잔잔하다못해 연약해 보이기까지 했다.

강함과 연약함의 경계를 이해하기 힘들지 모르겠으나

강할수록, 부드러워 보인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인다.

   

압도적이고 독창적인 현대무용의 안무가인 홍승엽의 무용과

거문고라는 발현악기를 가지고 뜯는 것만이 아닌 아쟁처럼 활을 사용해 특이한 음향효과를 끌어내는 박우재.
그의 춤사위의 몸동작을 즉석에서 과감한 붓질로 표현 하는 백성민 화백,
그리고 토우 도예가 김민수가 한데 어우러져 만들
토요일 평창동 토탈 미술관에서 열리게 될 ”풍류예가“의  공연이 무척 기대된다.

 

바로 그 다음날 미국으로 출국하는 관계로 도저히 토요일 공연을 보러갈 수 없기에

자세하게 사진을 찍어 미국으로 보내주겠다는 약속만 받고 연습실을 나오는데,

거리엔 비가 내리고 있어도 많은 주점들을 찾는 젊은이들로 북적인다.

빈대떡 사주겠다는 걸 사양하고 집으로 돌아온 난,

한동안  소파에 누워 움직이지도 못한 채 다시 춤사위와 거문고 소리를 떠올린다.

 

종일 바빠 몸은 좀 피곤했지만, 마음 가볍고 삶을 밝게 해주는

모든 소중한 것들과의 만남에 눈 스르르 감기는 입가론 절로 웃음 흘렀다.


 
 
華雨. 2009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