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22 08:18:06
내 그럴 줄 알았다.
그 소리는, 나무가 바람에 흔들려 제 몸 떨며 내는 소리였다.
왜 나무라고 홀가분해지고 싶지 않겠는가.때론 저들도 길가에 대자로 눞고 싶지 않겠는가.
종일 집에서 해야 할 일이 있어 산책 나갈 틈을 만들지 못하고 있기에
사진 두어 장만 가까운 길 가와 빗자루 질 하지 않은 뒷마당에서 담으며
내일이든 모레든 가고픈 길 나서보면
분명 계절이 한가운데로 성큼 들어서서 연출하는
가을 풍경 담을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그건 그렇고...
해외에서 20년 넘게 살며 이곳저곳 다녀도 시차 한 번 없던 내가,
요즘 시차를 앓고 있다.
시차인지 아니면 또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다른 이유기 있는지
아무튼 심한 불면증을 앓고 있다.
한 새벽 4, 5시 쯤 침대에 들어가 8, 9시쯤까지
평균 3시간 내지는 3시간 반 밖에 잠을 청하지 못한다.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에 나름 감정이 고조된 고양이 MJ가 잠 못 이루고
밤새 이러 저리 뛰어다녔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는, 아니 오늘 새벽에는 잠시 한 30분 졸듯 눈을 붙였을까.
내 침대 위에서 잘 자던 놈이 갑자기 귀를 세우며 고개를 치켜들더니,
커튼이 쳐진 창가로 뛰어 올라 안으로 들어가서는유리창 밖 가로등 켜진 세상이 밝은 대낮에 보던 세상과는 다른 것에 호기심이 이는지
여간해서는 무드를 타지 않는 놈이 요상한 소리까지 내며 꼬리를 흔들어대는 거였다.
아직은 언급하기 너무 일러 낙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밤이라도 집 앞 등 아래로 환하게 내려다보이는 길 위호 떨어지는 낙엽에 흠뻑 빠져들고만 것이다.
종일 잠자는 것이 일인 그녀가 저녁을 먹고 다시 잠들었다 진짜 잠에 깊이 빠지기 전 한 번 더 일어나는 밤 아홉시만 넘으면
장난기가 발동하는지 동공이 커질 대로 커져서는 아래위로 층계를 마구 오르락내리락 거리고,
쳐다보지도 않는데 괜히 의자 뒤에 숨었다가 내 어깨를 두 앞발로 때리고는 도망가서 숨으며,...
주인이 TV를 보건 말건 같이 놀아 달라며 조르다.다시 긴 밤의 수면 주기에 드는 것이, 보통 밤 10시 무렵이다.
그때부터가 정말 밤인 셈이라 작은 소리 정도 들리는 건 무시한 채
깊은 잠에 곯아떨어지곤 하는데, 어젯밤은 도저히 그럴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 우리 지니, 가을 타는가 보네 …….
대낮에도 창가 앞 의자에 앉아 종일 창밖 내다보다
나뭇잎이 떨어지면 우리네 어릴 적 하늘에서 별똥별을 발견하면 시선과 함께 고개도 따라 돌아가듯
지니 역시 흥분해 앉지도 서지도 못한 어정쩡한 자세로 바라보다
낙엽 따라 사선 긋듯 온몸 따라 움직이곤 하는 뒷모습이 마치 만화 속처럼 여간 귀여운 게 아니다.
아마 그 시각부터였을 듯…….
그렇게 몇장의 낙엽으로부터 전염되어 가을을 타게 된 거라고 추측된다.
밤하늘 아래로의 낙엽이 저 멀리 반짝이던 별도 아니건만
낙엽 헤이다 잠 못 이루고만 우리 예민해진 고양이 지니.
그 덕에 더 충실하게 예민한(?) 주인도 잠들지 못하겠기에 별수 없이 고양이를 방에서 내몰기를 두어 번,
1분도 기다려 주지 않고 자기 자리인 창가를 내어달라며 두발로 방문을 박박 긁어대는데는
잠을 포기해야만 할 것을 알면서도 열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아니겠는가, 내가 고양이라도 그러겠다.
집 밖의 세상을 알기를 하나,
사랑 한 번 해보길 했나... ...
개인 사정으로 곧 더 좋은 주인을 찾아 보내야만 할 그녀를 내 품에 데리고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기에,
방에서 내쫓았다가는 안타까운 마음에 결국 다시 방문을 열어주고
창가에 앉아 낙엽 바라보는 지니와 함께 뜬 눈으로 밤을 세운 것이다.
하지만 아침은 아침이라며 몽롱한 정신에 저 혼자 깨어나는 몸,
내리는 커피 향 너머로 밤새 내려간 기온이 제법 가을이 깊어졌음을 알린다.
간밤의 바람이 몰고 온 두 번 째 단계의 가을 색채에 길들은 어제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하루를 연다.
그래도 청 빛 물 든 듯 맑은 하늘과 햇살 좋은 오늘은
아무래도 밤이 되어서나 시간이 날듯 해 마실 나가고픈 심정을 누르며 참는 중이다
- Haejeong
Provance - Hideyo Takaku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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