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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렘이 이끄는 생 (詩와수필)/Like everyday life 2

[제주] 5.단지, 새로운 이들을 만나고 있을 뿐

by HJC 2015. 6. 26.



 

  



5. 

 

버스 시간표를 모르니 그럴 수밖에 없었겠으나 며칠 차 없이 대중교통만으로 다녀본 결과는

이날 이 시간대에 도착정보와 다르게  터무니없이 한 대를 건너 띈 것이지 40분 가깝게 기다리게 되었다는 겁니다.

다른 장소 다른 시간대의 버스들은 적힌 시간에 맞게 도착했고,

그렇기에 그 동네 주민들은 2분 전 쯤 나와서 여유 잡고 올라타기도 하는데 참말 모를 일입니다.

 

많이 기다렸어요.

 

한참 만에 도착한 버스에 올라타 맨 앞좌석에 가방부터 내려놓으며 하는 내 말에

드라이버는 납득할 만한 대답 대신, 뜬금없는 질문을 던집니다.


, 영어나 중국어 할 줄 아시나요?

 

. 그런데요……?

 

, 그럼 이쪽 좌석 여자 분이 홍콩인이라는데, 어디 내리려는지 좀 물어봐 주세요.

도대체 어디라고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운전수 뒷좌석, 그러니까 내 왼쪽으로 앉은 사람을 보니 20대 젊은 여자입니다.

홍콩인이라는데, 요즘 한국인은 체형 뿐 아닌 생김새도 많이 변해서

아래층에서 에스컬레이터로 올라오는 이들의 머리 꼭대기만 봐도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을 알아채던

1990년대의 일본 외국인 거주 지역에 살던 시기와는 다르게

    관광객이 많은 남대문시장이나 제주 같은 곳에서는 전체를 훑어봐도 100% 알아내기 쉽지 않게 된 지 오래 입니다.


우리의 주고받는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던 그녀가 갑자기 건네는 어디를 가려하느냐는 내 질문에,

그제야 귀 열린 듯 고개 돌려 나를 쳐다봅니다.

그녀는 정방폭포를 갈 계획인가 본데 그곳은 내가 가는 곳이 아닌 몇 정거장 더 가는 곳인듯해 드라이버에게 물어보려는데,

그러는 당신은 어디를 가느냐고며 그녀가 묻습니다.

목적지와 그곳에 대한 짧은 설명을 해주자, 그녀는 매우 실례인 줄은 알지만 하는 일 방해하지 않을 테니 동행하고 싶다는 겁니다.

아마 혼자만의 타국여행에서 말이 통하지 않아 좀 지쳤던 게 아닌가 싶어 허락합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나를 따라 버스에서 내렸고

우리는 버스 드라이버의 설명대로 먼저 여행자 서비스센타를 찾아 들어갑니다.

제주를 차 없이 도는 것은 처음이고, 이것이 그렇게 관광지를 관광하러 왔을 때와는 사뭇 달라

늘 어느 근처에 갔다는 것만으로 그 장소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 나는,

인포메이션 센타에서 각종 자료를 집어 나옵니다.

 

제주를 몇 번 다녀가면서도 주상절리에 가 본 적이 없어서 벼르던 터,

그곳이 첫번째로 가야할 곳이고 그곳 가는 길과 돌아오며 들릴 이미 두 세번 들렸던 천제연에 대한 설명도 챙겨 넣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체리고 나는 이름처럼 귀여운 이 홍콩 아가씨와 함께 오늘의 목적지인 주상절리로 향합니다.

점심 때는 되었어도 딱히 들어갈 식당이 보이질 않아 이것저것 사먹으며…….

 

가는 길에 듣게 된 것은, 체리가 홍콩 대표 라디오텔레비젼 방송국의 리포터이자 기자라는 사실입니다.

그녀와 내가 첫 대면부터 대화가 잘 통한다고 느껴졌던 이유가 아마도 이런 공통점을 가져서였을지도 모르겟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상절리에 대한 역사를 읽고 그것이 단순히 아름다운 협곡이어서가 아닌 화산 폭발에 의한 분출로 생겨난 지형이라는 것에,

그녀는 들고 온 루믹스 사진기의 렌즈를 바꿔가며 쉴새없이 셔터를 누릅니다.

 

 

 

 

   

 

지나다 컵라면 파는 곳을 보자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었다고 해서

간이식당 파라솔 아래 앉아서 먹으며 함께 젓가락을 들고 핸드폰 사진을 찍었건만,

나중에 찾아보니 하필 잘나온 그 사진만 없었습니다.

저장 버튼을 누르지 않아서인 모양인데 새 앱을 깐 후 테스트 한다고 

자동저장 설정을 해놓지 않았다는 것도 모르는 체 사용한 것을 내내 후회해도 소용 없습니다.

아이스크림보다는 어릴 적 사먹던 그런 아이스케키를 더 좋아한다며 두 개를 사들고 와

그것을 베어물며 이번엔 그녀의 폰으로 함께 사진을 담습니다.

 

그렇게 둘째보다도 나이가 적은 그녀는 그녀대로,

그녀의 엄마보다 나이가 위인 나는 나대로,

모든 것을 잊고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인간은, 어디를 가도 혼자이긴 어렵습니다.

단지 지인들로부터 기꺼이 떨어져 나와, 새로운 이들을 만나고 있을 뿐입니다.

 

 

 

 

 

 

 

갖고 온 것이 떨어져서 주지는 못 하고 받기만 한 그녀의 명함 일부입니다.

한국 내에서는 카카오톡 앱 인증이 안 되니 홍콩 돌아가면 꼭 설치해서 안부 전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아들 있는 부모라면 분명 욕심 낼 만한 큰 눈망울의 아름다운 체리와 많은 아쉬움을 남긴 채 헤어집니다.

 

    연락이 되면, 두 번째의 한국 방문 시에는 서울에서 만나 같이 이곳저곳 시간 제한 없이 다녀줘야겠다는 생각도 해보며,

그녀가 메르스에 총 비상이 걸린 한국에서 무사히 떠났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