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건 아닌데…….
왜요. 같이 가세요.
난 온천욕도 하고 푹 쉬려 했는데요…….
쉬면 되죠! 밤에.
그러니 같이 가세요. 어서요.
탄산온천 안에서 알게 된 젊은 아가씨들이
어쩌다보니 같은 방 메이트였더라는 묘한 인연으로 인해,
난 두 팔 보다도 나이가 어린 아가씨들에게 끌려 흑돼지 바베큐에 참석하게 됩니다.
그들은 내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즐겁게 대화를 주고받지만,
막상 내려가보니 투숙객 중 바베큐를 신청한 약 40여명의 사람들이 모인 이 야외 뜰에는
40대도 몇 되지 않는 듯 해, 식사 후 방에 갔다온다며 올라옵니다.
미국과는 달리 신경이 쓰입니다.
일단은,
혼자 여행하시다니 대단하세요. 하는 것에
왜? 너희는 하는데 나는 안 되니? 나이 든 이들 흔히 말하듯, 마음은 아직도 청춘인걸~,
속으로 직사포처럼 대답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나이가 들면 어디에 가도 자신의 얘기부터 타인의 이야기까지
경험만큼, 그리고 삶만큼 할 이야기도 쌓여있기 마련이지만,
젊은 친구들과 꼭 소통까지는 아니어도 소위 깔 맞추기는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딸들이 한국 사람으로 한국에 살면 보고 듣고 느낀 것도 있겠으나,
그 애들의 삶은 미국 젊은이인 거라, 한국 젊은이들에 대해서는 25년 이상 나가 살던 난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 맞추기위한 노력 대신, 몸살이나려나 피곤이 몰려와 약을 먹고 오겠다며 슬쩍 빠져나온 겁니다.
그들이 있는 곳으로부터의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습니다.
처음 만나는 이들과 1분도 안 되는 통성명 후 스스럼없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먹고 마시고
그러다 마음에 드는 이가 있으면 자리를 옮겨가며 앉아 인사 나누고,
그러다 더 마음에 들면 핸드폰 번호도 주고 받고…….
파티문화에서 살아온 내게는 생소하다고 할 수도 없는 문화가,
어느새 한국 제주에도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생소했습니다.
이곳은 이렇게, 다른 자그마한 숙소에서는 작은대로 엊그제의 그녀들처럼,
벽을 허문 인간적 대면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한국을 떠난 80년대의 사고방식으로 지내고 있던 나만 몰랐고
내 또래의 다른 이들은 모두 알고 있을까…….
하지만 어디에 가면 50대 후반도 넘겨버린 여인네가 친구나 동료가 아닌 사람들과
허물없이, 그리고 정신과 몸이 추하지 않게 어울리고,
그래도 색안경 끼지 않고 바라봐줄 곳 있겠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진이던 문학이던 내 또래가 없는 것도 아닐 텐데,
내가 속한 곳은 평균 연령이 최소 65세도 훌쩍 넘는 연장자들만 계시고,
그들 사이에서 난, 깔 맞추기를 하지 않아도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지냅니다.
단, 불만 한 가지가 있다면 그들에게는 내가 젊은 여성인지라 자주 영계라는 농담까지 듣게 되더라는 거.
처음엔 무시당한 듯 그런 속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것에 내심 당황했지만,
하지만 5년여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내가 그 문화에 맞춰졌다기보다는,
사회 자체가 대박이니 멘붕이니 영계니 하는 속어들을 표준어로 받아들이게까지 변한듯 합니다.
한 예로 대박이라는 단어만 해도 처음 한 1년은 중고생 애들이 쓰는 그 단어를 어른이 쓰면 좀 천박하게도 보였고,
그 후 1년 정도는 화가 북받칠 때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욕이라도 하면 조금 나아지듯
마치 느낌표를 소리로 외치지 못하니 그대신 대박! 이라 외치면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으로도 어울리며,
나름 그 단어가 가진 묘미가 전해지더라는 겁니다.
그 후 지금까지는 그 말을 하는 당사자와 맞장구를 치며 끄덕이거나 웃는다는 건데,
그것은 언제부터인가 처음 그 단어를 남발하는 이에게서 전해져 오던 ‘천박함’ 대신
귀여운 여인네가 하면 귀엽고 총각이 하면 씩씩하게 느껴지며
스스로 어디에도 어우러지는 그 단어에 익숙해지더라는 것입니다.
논란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인정받는다는 것,
문화라는 것은 옳고 그르거나 대단하고 사소한 것을 떠나 익숙에 그 기반을 두는 까닭이겠습니다.
바베큐는 6시 반 일찌감치 시작했고 다 좋았는데..
그 좋은 곳에서 내가 잠을 청하기까지는 좀 시간이 걸려 자정이 넘어서야 가능했습니다.
그들은 마셨고, 화장실로 달려갔고, 젊음은 그들을 제주도에서 그리 쉬이 잠들지 못하게 했습니다.
물 먹여 가며, 가져온 소화제 건네가며, 등도 쓸어주며, 어느새 난 그들에게 엄마처럼 굴고 있었고,
그들은 그런 내게 자연스럽게 기댔습니다.
그 와중에 내 뒤쪽에 자리 잡은 늘씬한 아가씨는
아까 보셨지요? 제 앞에 앉았던 잘생긴 남자요. 같이 한 잔 주거니 받거니 마시다 보니 그와 나, 우리는 벌써 한 10년은 된 친구같더라니까요?
그 말에 대박! 다른 친구가 외쳤고, 모두 깔깔 대고 웃으며…….그렇게 그렇게 시간이 흘렀기 때문입니다.
이곳의 장점은 무엇이고 그곳의 단점은 무엇이며.
숙소에 대한 장단점을 평가해 보려던 머릿속은,
장점은 말 할 수 있어도 딱히 단점이랄 것은 없다는 결론입니다.
그들은 젊은이들답게 놀았고 난 나대로 내 딸들 생각하며 그들과의 시간을 마냥 즐긴 것 보면,
500불 하는 유명 호텔에서 머물며 하던 여행과는 다르게,
여행이란, 특히 자연을 찾아드는 여행이란
그 환경의 화려함보다는 그 시기 혹은 여행을 맞이하는 마음가짐에 따라
알맞게 입혀지는 색채와 같다 할 수 있겠습니다.
....
그동안 스스로 가둔 듯 살아온 공간으로부터 벗어나니
이렇게 묶음으로 기다려온 위로와도 만나게되고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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