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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렘이 이끄는 생 (詩와수필)/Like a story

(4) 고베지진수기/ 불바다다! 쑤미요시가 불바다다!

by HJC 2010. 3. 13.

 

 

 

 쑤미요시와 로코 아일랜드만을 연결하는 무인 전철 로코 라이너라 부르는 전철 길이다.
우리넨 저 멀리 보이는 곳이 섬. 생김새로 왼쪽 42층짜리를 킹, 오른쪽을 퀸빌딩이라 불렀다.

 

4. 불바다다! 쑤미요시가 불바다다!

아이들이 다니던 인터내셔널 스쿨인 캐나디언 아카데미에는 자가발전 시스템이 있다고 했다.

실내는 약간은 답답하게 느껴졌으나 코트를 벗어야할 정도는 아니었다.

애들이 점심 식사를 했을 카페테리아의 둥그런 원탁에는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아는 이들 끼리, 혹은 모르는 사람이라도 같은 나라거나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한 곳에 모여 앉았다.

하지만 간단한 인사 말고는 침묵으로 일관한 채 우리는 기다리는 일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얼마 후 간단한 지진 상황에 대한 것을 처음 듣게 되었다.

고베에서 15킬로미터 떨어진 아와지 시마가 진원지로 피해가 극심한 곳은

고베 안에서도 나다 구, 그 나다 구역 중에서도 히가시나다 구였다고 했다.

우리가 사는 곳도 히가시나다 구, 우리 섬에서 나가 본토로 이어지는 동네들도 히가시나다 구.

그리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산다던 많은 한인들이 일을 하고 있던

로코미치 시장이 있던 그곳도 효고 켄 히가시나다 구였던 것이다.

그제야, 우리가 지진이라는 괴물에게 제대로 덜미 잡혔다는 걸 알았다.

모든 통신이 두절된 상태에서 겨우 열리기 시작한 라디오는

지옥에 내어진 온 세상으로 통하는 단 하나의 창이기도 했다.

 

오 마이 갓~~!

우린 전부 죽을지 몰라요. 언제 지진이 다시 터져 섬을 반으로 갈라놓을지도 모르고요...

일부 일본어를 알아들은 외국인들이 놀라 어쩔 줄 몰라 대강 그런 말들로 실내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로부턴가 음식들이 왔다.

카페테리아에 학생들을 위해 가져다 놓았던 것으로 음료수와 빵이었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모두 원하는 대로 가지고와 먹고 마셨다.

마치 지금 먹어두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듯 모두 열심히 먹었다.

먹으면서도 자꾸만 목이 멨던 난 그런 그들을 보며

준비 혹은 대비라는 것을 생각해볼 여유조차 없는 ‘처음’ 이라는 상황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섬 안으로 들어오는 유일한 육로이던 로코 라이너 철길이 휘고 다리가 갈라졌으며

본토는 본토대로 전부 무너지다시피 해 막막할 상황.

그러나 당장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 수 있는가에 대해선,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단지 지금 먹지 않으면 먹을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 까지만 알고 배를 채우는 거였다.

싸한 슬픔에 그만 눈물이 나려 했다.

먹다 보니 위장을 채운 뒤의 문제는 비우는 일이었다.

우리는 부족하나마 다행히 학교 안의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일본인들은 운동장에 각 1개씩 놓인 남녀 간이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

그 추운 운동장 끝에서 끝까지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도

무너질까봐 아파트에는 돌아가지도 못한 채 춥고 배고파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어떤 이는 문을 두드리며 노모가 감기라 힘드니 실내로 들여보내주길 사정 했으나,

안내자들은 죽을지 살지도 모를 상황에서 누구 한 사람만의 편리를 봐줄 수는 없는 거라며 완강하게 거절했다.

안타깝긴 했으나 추위에 떨고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상태라 그럴 수밖에 없는 듯 했다.

너희 학교고 너희는 외국인어서 너희만 따뜻한 곳에 대피할 수 있는 거냐고

특혜를 누리는 우리에게 따지는 이가 단 한사람도 없다는 것은, 거의 신기할 정도였다.

들어가게 해달라는 부탁도 겨우 몇 사람에 그쳤던 것으로 기억되는 그들에게선,

원망의 눈빛도 절망의 참담함도 읽혀지지 않았다.

다만, 살아남을 수는 있겠는가의 정점에서 쓸데없이 힘을 낭비해서는 안된다며

최소한의 호흡만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아무튼,

추운 운동장에서 질서 정연하게 줄서서 기다리다 마침내 화장실을 다녀오게 되면,

그때부터 새로운 시작으로 그 줄 맨 끝으로 가서 한 두어 시간 후 가게 될 차례를 위해 다시 줄을 서곤 했다.

창밖의 그런 그들을 보던 우리들 중 누군가가 저들은 화장실 사용도 저렇게 힘들게 하고 있으니

되도록이면 변기 물 내리는 것을 자제하고 고장 나지 않도록 조심하자는 말을 했다.

그렇게 그들은 그들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살아야 했다.

수차례의 진도 5,5도 정도의 여진을 겪다 저 멀리서 번개, 천둥이 치는 듯 커다란 폭발음이 들려왔고,

라디오를 듣고 있던 누군가가 창가로 뛰어가며 비명을 질렀다.

 

불바다다! 쑤미요시가 불바다다!

 

우리는 그가 하는 대로 창가로 우르르 몰려갔으나 잘 보이지 않아,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학교가 남쪽 섬 가장 끝 부분에 있는지라 반대편이 건물에 가려 잘 보이진 않았다.

다만 섬과 육지를 이어주는 고가 다리 위쪽으로 통해 있던 무인 전철 로코 라이너 다리와

고베 본토가 연결된 부분의 동네인 수미요시 방향에서 연속 굉음이 들려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6.25 때 사람들은 이런 소리를 들으며 남으로 남으로 피난길에 올랐을 거란 생각되는 그런 전쟁이라도 일어난듯

온 하늘은 시커먼 연기에 휩싸였는데 마치 육로로는 더 갈 곳 없이 막혔다는 듯

바다의 하늘로 번지며 우리가 있는 섬을 향해 덮쳐오고 있었다.

바로 그때, 다급한 음성의 발표가 들렸다.

 

섬 안으로 가스가 유출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니 어떤 이유에서든 성냥이나 라이터를 켜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칫하면 지진으로가 아닌 폭발로 섬 전체를 날리게 될 수 있으니, 담배 피시는 분들, 특히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천재지변을 생각해 처음부터 이 섬 안에는 가스 스테이션이 만들지 않은 거라고 했다.

육지에서 기름을 채워야만 했던 우리는, 늘 그 점을 불편해 했었는데

본토와 모든 것이 끊어지는 이 상황에 폭발까지 일어난다면...역시 그 생각은 합당한 것이었고,

그 덕에 로코 아일랜드만은 쑤미요시에서 일어난 것 같은 폭발로 부터 지켜지고 있었던 것이다.

 

죽는 한이 있어도 안 피워야 한다. 가 아닌, 통째로 폭발해 죽을까봐 피면 안 되는 것이, 담배였다.

그때 누구든 담배를 피우는 일이란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벼랑 끝에라도 선 듯 다급한 음성은 조그마한 불씨 하나면 이 섬의 모든 생명이

끝나고 말 거라는 사실을 그날 내내 몇 차례고 경고하고 있었고

몇 분에 한 번씩 그릉..그르릉...그르르릉...여전히 여진이 땅과 건물을 흔들고 있었으나,

사람들은 어느새 적응 한 듯 놀라는 기색도 아침만큼은 아니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