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요? 안에 누구 없어요?"
급하게 두드리는 소리에 현관으로 달려 나가 문을 열자,
어디 다친 데는 없느냐며 다시 지진 나면 무너질지도 몰라
모두 학교로 긴급 대피하라고 했는데,
왜 아직 이러고 있느냐며 빨리 나오라고 재촉 했다.
아이들이 다니는 인터내셔널 스쿨로 모이라는 전달을 지금까지 받지 못한 모양이라며
혹 그런 사람이 있을까봐 빌딩을 순찰하는 중이라는 거였다.
두툼하게 옷을 껴입고 주머니에는 가지고 있는 현금을 챙겨
곧 무너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바삐 빌딩을 빠져나왔다. .
밖으로 나오니 도로 여기저기가 갈라지거나 뒤집어 진 것이 보였다.
평소 날 따뜻해지면 아무나 들어가 놀곤 하던 섬 가운데로 바닷물을 들여와
자유롭게 섬 중간으로 흐르도록 만들어 놓은 깊이가 허벅지 정도던
시내의 물도 넘쳐흘러 나와 비온 뒤처럼 도로를 적시고 있었다.
건물 외벽이 돌보다 튼튼하다는 엄청 두꺼운 유리로 되어있는 36층짜리 외국회사의 아시아
본부 건물은 다행히 커다란 유리창 몇 장만 깨져 떨어져 내린 것 말고는 외관상 별 다른
상 없어 보였으나, 비치는 아니어도 처음 만들 때 어뮤즈먼트 파크로 만들어진 바닷가는
단식으로 되어 있어 사람들이 즐기며 바다를 바라볼 수 있게 해 놓았었는데,
그 모든 것들도 심하게 파손된 듯 보였다.
그야말로 책에서나 있을 법한 표현처럼 쩍 갈라진 땅과 뒤죽박죽된 나무며 벤치며...
항구의 정박된 선박들은 엎어지고 화물 컨테이너들은 바다로 곤두박질 친 듯 박혀 있었다.
나중에 사진들이나 동영상에서 봐도 알 수 있듯 커다란 빌딩들이 무너져 내리거나
중간층만 겨냥한 듯 내려앉은 모습과는 다르게 우리 섬의 빌딩들이 멀쩡했던 까닭은,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어지럽게 나타난 지진이 우리 섬에만
얌전하게 닥쳤기 때문은 아니었다. 일본에 이사 들어올 적 듣기로,
섬을 만들 때 다지는 바다 공사는 물론이고 42층, 36층, 32층 그리고 제일 낮은 15층짜리까지...
고층 건물들을 지을 때2년이 지나도 지상으로 건물이 올라가질 않아 지켜보는 이가
지겨울 정도였다는 말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섬을 만들 당시부터 건물을 하나씩 올리기까지
모든 기초 공사를 지진을 대비해서 오래 전에 지어진 고베의 건물과는
다르게 단단하게 짓느라 더뎌 보였던 것이다.
일본에서는 일반 주민들이 사는 아파트에 우리나라처럼
발코니 전면 유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언뜻 그것이 깔끔해 보이진 않아 보일 수도 있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인정해 줄 일이다.
한 가지 생각나는 일을 예로 들어보자면,
이스탄불에서 빠져나가는 교외 부근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는데,
나중엔 하나 둘씩 벽돌로 집을 지어 자신의 영토인 양 눌러 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스탄불에 지진이 일어나자, 막상 가장 인명 피해가 컸던 곳은
이스탄불 씨티가 아닌 그곳이었다.
피해가 많았던 가장 큰 원인은 사실은 땅으로 부터가 아닌,
가난하던 그들이 집을 짓느라 모래를 많이 섞어 만든 값싼 벽돌로 집을 지은 때문이었다.
쉽게 부서진 벽돌의 날카로운 조각들에 의한 사망과 부상이 대부분이었다는 분석이 있는데
그 지역을 지나며 과거의 이야기지만 참변이 일어났을 그 당시가 그려져 등골이 오싹했다.
이렇게 터키에서의 피해를 돌아봐도 짐작할 수 있듯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건 지진이 일어난다면,
발코니 유리창만큼 생명을 위협하는 무기는 따로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쨌든 그때까지만 해도 우린 우리가 겪은 조금 전의 상황이 어떤 것이었는지,
섬 밖, 즉 육지인 고베 본토는 어떤 상황인지 전혀 알 길 없이
그저 도망 나오느라 경황 없던 나머지 방 쪽 창에서 보이는 고베 항구가 있는 산노미야 쪽은 잊고
눈앞에 보이던 오사카 쪽만 보니 조용하기에 우리가 사는 곳에서만 일어난 지진인 줄 생각했었다.
학교 운동장에는 피난 나온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정문에는 팔에 완장을 두른 여자 두어 명이 안내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 가족을 보자 문을 열어 학교 안으로 들여보내줬다.
카페테리아로 들어서자 외국인만 살던 우리 만션 사람들 대부분이 거의 모두 모여 있어서 놀랐다.
대강 훑어 봐도 우리가 맨 마지막으로 도착한 듯 보였다.
어떻게 그처럼 기본 상식도 없으면서 알아보지도 않고 용감(?)하기만 하냐고 어처구니 없지만,
미국에서 일본으로 하우징 트립을 갔을 적 자장면과 비슷해 주문했다가
도저히 넘어가지 않는 소스 맛에 접시를 멀리 밀고 말았던 야끼소바라는 음식을
이사 와 살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좋아하게 된사실들만 봐도 알 수있듯,
첫사랑 뿐 아닌, 처음 먹어보는 음식, 처음 살게 되는 환경 등, 처음’이라는 의미는
세상에 무경험에 대해 그토록 낯설고 바보가 되는 것인지,
그리고 그 낯선 환경에 본의 아니게 귀머거리, 벙어리로 살던 한 달 정도의 시간은
그 '처음'의 의미가 퇴색되기엔 멀어도 한참 먼 시기였기에,
몰라도 살며 익히고 배우려던 환경 적응 법칙에 제 편한 면만 길들었던지,
빌딩 옆구리가 휠 정도의 지진 후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도
미련하게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기다리는(?) 여유를 부린 것이었다.
바로 전날 강하지 않은 지진이 서너 번 발생하던 그 상황에 대한 것이다.
당일 가장 피해가 많은 곳이라고 빨간 표시가 되어 있는 곳 중에
내가 살던 섬도 들어가 있다.
머디 워터가 끓듯 하는 모습의 주로 일본 주민들이 살던
다른 한 곳의 인공섬인 포트 아일랜드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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