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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렘이 이끄는 생 (詩와수필)/Like a story

(1) 고베 지진 수기/ 나는 고베 한신 대지진 한가운데 있었다

by HJC 2010. 1. 22.

 

  

나는 고베 한신 대지진 한가운데 있었다 / 화우 정혜정

전날 저녁 무렵부터 열이 오르던 아이에게

자정에 먹인 해열제를 한 번 더 먹이려 잠에서 깬 것은 새벽 다섯 시 반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침대 헤드 보드에 놓여 있던 시계를 보며

한 10여 분 뒤척이다 막 몸을 일으키는데,그르르릉그르르그르르그르르르르릉..................

마치 너무 커서 감지조차 하지 못하는 거라는 지구 도는 소리를 처음 듣게 되기라도 한 듯

몸이, 집이, 그리고 세상이 마구 흔들리듯 하더라고밖에 표현할 길 없는 진동이었다.

 

그랬다.

그날 난, 고베 한신 대지진이 일어난 그 한가운데에 있었다.

1995년 1월 17일, 새벽 5시 46분

고베 한신 다이신 지신, 고베 한신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난 바로 그 지진의 진원지였던

아와지 시마와 제일 가까운 고베 시에서 만든 인공 섬 두 곳 중의 하나였던

로코 아일랜드라는 곳에 살고 있었다.

그래 그 당시까지 기록된 도시에서 일어난 지진 중에

가장 인명 피해도 크고 그 강도도 셌다는 지진을 직접 보고 겪었다,

 

1995년 1월 17일, 새벽 5시 46분

 

살고 있던 32층짜리 만션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바로 아이에게 해열제를 먹이려고 일어나던 순간이었다.

난 침대에 몸을 반쯤 엎드린 상태에서도 어떻게든 아이들에게 가려고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그 어떤 힘도 지구가 흔들리는 것에는 대응할 수 없었던 그 20초는

'세월'이라 할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움직여 보려 애를 써 보지만 인간의 의지란 얼마나 무기력한 것인지

자연의 변화 앞에서는 단 몇 초 만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오랜 후인 지금 말로 표현하려니 그렇지, 진동이 시작되던 그 순간 떠오르던 단편적 기억은

슬라이드로 풀어도 한 보따리는 되었던 것 같다.

(우리가 이러다가 죽는구나.)

그 어떤 정리도 하지 못한 채 세상 무너지는 가운데로 파묻히는 거구나.

안간힘 쓰며 일어나려고 하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이미 죽음의 그림자를 인정하며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몰랐다.

 

………….얼마나 흘렀을까.

진동으로 시트의 옷자락을 잡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으며 일어나지도 다시 엎드리지도 못하게 흔들리던 세상이 멈춰섰다.

주위는 온통 캄캄했고 머리맡 놓여있던 라디오 시계의 붉은빛도 보이지 않았다.

침대 위의 몸을 일으키며 움직이려 하자, 몸 주위에서는 깨진 유리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중에 그 소리가 침대 헤드보드 위에 놓여있던 크리스털 전기스탠드 두 개가

베개 위로 떨어져 부딪히며 깨지는 소리라는 걸 알았다.

누운 채였다면 하마터면 얼굴에 유리 세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조심해. 움직이지 마. 당신 괜찮아?

뭐야, 지진인가? 지진?

그런 것 같아. 그러니 아무 것도 손대지 마. 다 깨져 유리 조각인 난 것 같으니까.

우선 아이들한테 가게 커튼이라도 열어야겠어. 하나도 안 보여.

잠깐! 발을 방바닷으로 그냥 딛지 말고 실내화 어디 있는지 알지? 우선 그것부터 찾아 신자.

침대 아래의 슬리퍼를 찾아 신고 바닥으로 한 발 내딛는 순간, 바삭.하는 유리 밟는 소리가 났다.

그 유리는 아마도 그림 액자가 떨어지며 깨진 거였을 것이다.

실내가 칠흑 같아 분간할 수는 없었으나 더듬거리며

조심스럽게 무릎으로 몸에 닿는 물체들을 밀어내고며 애들 방 쪽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두 채를 함께 붙여놓은 듯 아이들 방과 따로 떨어져 조용해서 좋다던

만션(맨션)의 구조는 애들 방까지의 거리를 어쩜 그리 멀게 느껴지던지………….

그런데 애들 방이 있는 다른 응접실로 통하는 중간 철문의 문 높이가 어긋났는지 잘 열리지를 않았다.

다급해진 나는 있는 힘껏 밀어 겨우 몸이 빠져나갈 틈이 마련되자

아이들 방 쪽 홀로 들어서며 아이들 이름을 불렀다.

겁에 질려 울던 아이들은 엄마의 음성이 들리자더 큰소리로 울며외쳤다.

Mommy…….Mommy…….

미국에서 일본 고베로 이사 온 지 불과 한 달,

인터내셔널 스쿨에 다니던 아이들은, 당시 초등학교 2학년과 유치원생이었다.

그래. 그래. 엄마 여기 있으니 무서워하지 마! 엄마 여기 있어. 당신 빨리 좀 와. 애들 방문이 안 열려! 빨리!

뒤에서 실내화를 찾아 신고 오느라 겨우 몇 초 늦었을 뿐인 그를,

마치 몇 시간이고 땅굴 속에 버려져 있다가 구조대원의 기척을 듣게 된 듯 불러댔다.

방문이 열리지 않았던 까닭은 문과 반대편 끝에 놓여있던 원목, 2층 침대가 진동에 의해 방문 앞까지 밀려오며 아래에서 위까지 문을 꽉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무거운 것이 몇 미터나 저 혼자 밀려 움직이다니 정말 엑소시스트 같은 영화에나 나올 법한 상황이었다.

겨우 문을 열고 들어가 아이들을 안아주자 서서히 울음을 그쳤고

그제야, 갑자기 이 세상이 무서우리만치 조용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참으로 무서운 적막이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