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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렘이 이끄는 생 (詩와수필)/Like a story

비가 와도 그는, 젖지 않는다

by HJC 2010. 1. 8.

 

                         

 
 
 
   비가 와도 그는, 젖지 않는다 / 華雨
 
 
"불 좀 켜구 지내지, 어둡잖아, 너무"
 
창문으로 들어온 그가 뽀송뽀송한 모습으로 서 있다.

"부엌 쪽은 어둡지 않아. 2층도 그렇구...
점심 먹으러 내려오는 길인데 아침은 먹었니... 당연히 또 굶었지?
김치 볶음 밥 해서 같이 먹자."
들어오는 빛을 가리며 창 앞에 서있던 그가 부엌 내부가 보이는 카운터 탑 근처로
의자 한 개를 끌어당겨 앉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고
그녀는 말없이 냉장고에서 쇠고기와  김치 한 대접을 꺼내 도마 위에 놓고 다지며 말을 시작했다.  
"꿈을 꿨어. 산책로도 아닌 차도에 토끼가 있더라.
거 잇잖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나비넥타이 맨 토끼.
죽을까 봐 손사래 치며 얼러 쫓아내려는데 꼼짝두 안 했어. 
어제 고속도로에서 고양이가 죽어있는 것을 봐서 그런가.. 
왼쪽에서 차가오나 안 오나를 살피며 난 다시 한 걸음 다가가 소리 쳤지.
휘이~ 휘~ 토끼는 딱 내가 움직인 것만큼만 뒤로 물러나는데 그것이 차도 쪽이니 
더 위험하더라고. 그런데 그때 반대편 쪽에서 차가 달려오는 거야.
난 양손을 흔들며 빨리 가라구 마구 소릴 질렀지.....그러다 깼다.
그런데 꿈이 계속 되었다면 토끼는 나로 부터 도망쳐 반대편 길로 건너가긴 갔을까.... "

"꿈인데 물러서지 말고 좀 따라가 보지 그랬니.....
넌 항상 너의 모든 일이 중요할 수도 있는 어떤 정점에 이르게 되면, 
예의 그 망설임 때문에 멈추곤 하는 게 문제야.  좀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일 필요가 있어.
만약 토끼를 따라갔다면 넌 동화 속의 "이상한 나라"로 들어갔을지도 모르고
많은 신기한 것을 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평소 가서는 안 될 곳을 꿈꾸기라도 하나? 그런 토끼 꿈을 다 꾸게..."
 
도마 위에서 김치를 다지던 그녀의 손놀림이 그 말에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그걸 보던 그가 마치 지금에야 생각났다는 듯 이어 말했다.
 
"네가, 권태로워하는 것 같아 왔다."
 
카운터 탑에 손가락을 탭.탭. 두드리며 하는 그의 말에 
그녀는 도마질 하던 손을 멈추고 칼을 내려놓으며 돌아보았다.
 
"그랬니.. 그랬구나...사실 요즘 그런 느낌이 없는 건 아냐.
다만 난 이제까지 그 권태의 반대를 쾌락이라고 생각 하고  
그 쾌락이 권태를 소멸시킬 수 있다 여겼는데 그게 착각이란 것을 알게 되었어.
권태와 맞서는 것은 쾌락이 아니고 자극이야.. 응. 자극일 뿐이야."
 
"아니.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권태의 반대는 죽음이지.
자극이란 또 다른 권태를 유발시키고 결국 그것은 자극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 아닌 넘쳐나서 생기는 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물 좀 따라. 식탁 매트도 좀 놓구.. 간단히 수프도 끓일까?...
하기야 누구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결론은 자신이 내는 것이라
사슬고리처럼 굴레를 만들어가지. 죽음으로 종결짓는다면 
결론 나지 않을 것 없고, 그런 결론이란, 늘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내게 되는 거 아닐까...
참,  나 있지....무슨 적성 검사 인가를 했어. 부자 될 확률이 25% 라대?
그리고 내면을 들여다 본다는 정확하다는 테스트의 결과에서는
내 몸이 너무 오래 방치 되었거나 혹사당해 왔다. 라고 나왔어.
그 말에 저촉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될지 답변 치곤 정말 귀여운 발상 아니니.. "후훗. 정말 그러네.  방치와 혹사는 반대 개념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니
도망 갈 구석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릎 치며 맞는 말이라고 생각 들겠다. " "그런데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네가 방금 한 이야기도 생각해보면
이처럼 반대 개념의 대치처럼 마찬가지 아니겠느냐는 거지.
자, 먹어봐. 그리고 오늘 나 때문에 시간 낭비했다기 보다는
내가 통 파고 있어서 와 준 거 아니구 그저 놀러와 맛난 점심 한 끼 함께 먹는거라고 생각하렴."

 

 "그러지.....그런데, 이젠 좀 더 구체적으로 살아보는 게 어떻겠니...
이 세상에 유보될 수 있는 행복은 없어. 그래서 난 네가 분출의 장을 다변화 할 필요가 있다구 생각해.
바람이 숲을 스칠 때는 흔들리는 잎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그들이 지나면 어디에도 그 소리가 없듯, 네가 잘 가는 호숫가도 마찬가지인 거다..
새들이 날아와 지저귀며 호숫가 나무 위에 앉을 때 보았던 물 위 그림자는 그 새들이 떠나고 나면

어디에도 없는 것 처럼 말야. 그러니 상황도 적당한 시기도 네 스스로가 선택해야 한다는 거지."


 

"그래. 역시 넌, 비가 와도 젖질 않네. 자신을 지킬 줄 아는 내면으로 부터 나오는 힘이 있어,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 뵈니 좋네.
하지만 자신을 약하게 만드는 원인과 그것을 방치하는 죄의식으로 부터 헤어나고자 하는 긴급 피난이란,
절실한 만큼 슬픔으로 남게 될 수도 있다고 봐. 그것이 현실에서 내가 더 구체적일 수 없는 이유를 정당화 시키게 될 수도 있기에...
그 구체적이 된다는 것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부터 잊고자 하는  아픔을 다시 들춰낼 테니. 
Innisfree 이니스프리.....결국 나를 살리기 위해 나를 가두는 불안한 정열에서 놓여나는 길은
존재의 깊숙한 곳에서 스스로를 행복한 사람이다 여기며 누구보다도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일이라 생각하거든.
아마도 그래 난 자꾸 옹이처럼 움츠러드는 걸 거야......."



 ......................

 

 긴 여운을 남긴 채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수저를 내려놓은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맞은편엔 단정하게 놓인 식탁 매트와 차게 식은 김치 볶음밥만이 놓여 있다.
                                                            

 


    



              * 통파다; 혼자만의 생각에 깊이 빠져 들어있는 상태.
              * 이니스프리 ; 예이츠의 시에 나오는 지명으로 끝없는 동경지, 영원한 그리움를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