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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렘이 이끄는 생 (詩와수필)/Like a story

(6) 지진 후 첫 구호물자의 도착

by HJC 2010. 4. 5.

 

 

 

                                                       고베 시 산노미야에 있는 하버랜드 

 

 
 

 

 

 

 

오니기리 도착했습니다!

 

갑자기 입구 쪽에서 카트에 상자 몇 개를 실은 남자가 나타나며 외쳤다.

드디어 지진 이후 첫 구호물자가 도착한 것이었다.

모무척 배가 많이들 고팠던 터라 얼른 일어나 물 한 병과 주먹밥 두어 개 씩을 받아왔다.

모여 앉아 먹기 시작하는 원탁 테이블에 한가운데에 집에서 백 팩에 담아온 고추장 멸치 볶음을 꺼내 놓자,

약간의 소금 간만 되어 있는 주먹밥 한 입에 멸치 한 젓가락씩을 입에 넣은 사람들은

너무 맛있다며 만족한 표정들을 지었다.

갑부건 고위 공무원이건 각 회사 간부건 돈이나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그 순간의 우리에게는 배를 채우는 일만이 삶이었다.

쌀을 주식으로 하지 않는 외국인들에게는 맨밥만 뭉쳐 놓은 주먹밥이 마지못해 먹는 음식이었겠으나,

우리 한국인 테이블에서는 김 등 각자 가져온 밑반찬을 조금씩 꺼내 놓았기에

상황을 모르는 이가 보면 무슨 동네잔치라도 하듯 제법 풍성한 상차림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로 어느 정도 배가 불러오자,

살아있는 느낌이 강해질수록 불안감이 가증 되는지 모두 다시 침묵하기 시작했다.

두드리기 전엔 전혀 문을 열어줄 것 같지 않은 일본 정부 측에

섬 주민들은 자신들에게도 구원의 손길을 보내 달라 몇 번이고 요청해도 반응이 없는 까닭이란,

로코 아일랜드는 본토에서처럼 지진으로 빌딩이 크게 무너지거나 사상자가 생긴 것도 아니고

화재의 위험에서도 벗어나 극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외국인이라고 특혜를 주던지 혹은 그 반대로 그래선 안 된다는 것은 아닌,

육지와 단절되고 위험한 폭발물로부터도 지켜졌으니 잠자코 기다리라는 거였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섬으로 따로 떨어져 있었기에 본토처럼 불바다가 되지 않은 것을커다란 위안으로 삼던 인내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들의 하루 앞도 모를 불분명한 생존에 대한 불안에 조금씩 절망을 낳고 있었던 것이다.

수많은 인명 피해가 난 곳도 일일이 손길 다 미치지 못 하는 판국에 잠자코 기다리라는 뜻이었겠으나,

사람 죽이는 지진 일어나는데 시간 걸리지 않듯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는 것 또한, 그리 시간을 요하는 일은 아닌 듯 했다.

찾아 들어가도 재수 없으면 다시는 나오지 못하게 될지도 모를 두려운 내 집.

뒤죽박죽된 것은 둘째 치고 자칫 오물로 넘쳐날까봐 화장실을 눈앞에 두고도 사용할 수가 없었다.

 

해만 지면 불빛 하나 없이 캄캄한 세상 속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 없이

1월 혹한에 추워도 촛불 한 자루 켜면 안 되고

머릿속 확실한 것 하나 없으며 배만 고파 정말 잠조차 들기 쉽지 않던,

일본인들에게 귀족처럼 보이던 겨울 햇살 받은 멋진 빌딩들의 얼음 섬은, 말도 못하게 초라해져갔다.

 

게다가 일본 정부 측으로부터 아직은 도움을 줄 여유가 없다는 거절을 당하고보니,

사실 지진이 나도 그 자리 일 수밖에 없고

불이 나면 바다로 뛰어드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을 우리들에겐

단, 이틀 지났을 뿐이라지만 이미 내일이 불투명한 최악의 상황 하에,

집 없이 살던 이들보다 정신적으로는 이미 몇 십 배 더 피폐해 졌다.

하지만,  고베 본토의 피해상황을 듣고서도

구원의 손길이 오지 않는 다며 불평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간혹 그런 사람들이 있어 잠시 목소리 높이다가도

주위 아무도 반응을 해주지 않으면, 절로 수그러들었다.

우린 그렇게 안타깝고 속상한 가운데에서도

그저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상황에 깊이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것에도 감사해야 한다면, 그동안의 삶에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은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 알갱이만큼이나 많을 것이었다.

우선 그 무서운 강진이 이른 새벽이 아닌 대낮에 일어났다면 어찌 되었겠는가.

집안에 있었더라도 부엌이든 어디서든 날라 오거나 떨어져 내린

날카로운 무엇에 부상을 당하거나 죽었을 수도 있는 문제였고,

도심지의 빌딩들이 무너져 내릴 때 평소처럼 근무 시간 이었다면

어찌되었을까는 익히 짐작되고도 남을 일이었다.

 

옆으로 넘어져 버린 고가 위에 있던 수천대의 차들이 곤두박질 치며 

안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다치거나 죽었을 것이다.

겨우 살았다 해도 그 중 차가 한 대라도 폭발했다면

수천대가 같이 폭발하는 최대의 비극이 일어나고 말았을 것이었다.

조금 덜 해 다행이라고 말하는 현실에서도 결국엔

지진 후 본토에서는 가스 폭발로 불바다가 되는 안타까운 일을 비켜갈 수 없었지만.

불과 사흘 전, 엄니와 함께 고베 다운타운을 걸어 다니며 쇼핑을 했고

8층 건물이던 산노미야 다이에 빌딩 7층에서 자전거 두 대를 주문했었다.

그곳이 바로 이번 지진으로 전부 무너진 신문에 나온 건물 사진들 중

중간 부분만이 납작하게 부서진 사진이 보이던 바로 그 4,5층이었는데

그날 이후 그 건물들은 더는 잔재조차 이 지구상에 남아있지 않았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기준 내지는 자신의 계획이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환경에 따라서 자신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될 수도 있기에

현재 일어나는 일이나 지난 일을 보며 이렇게 감사를 하게 되는 것은,

바닥에 닿았다 치유되는 과정으로부터 절로 우러나서이다.

 

점심으로 오니기리가 도착했는데 한 입 베어 무니, 쉬었다.

다른 이들 것은 괜찮은지 먹는 이들도 있건만, 못 먹고 버렸다.

있는데 안 먹는 것과 없어서 못 먹는 것이 얼마나 다른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5일 후 구조 된다고 하면 차라리 5일 동안 단식하는 거라고 마음잡고 굶으면 될 것을,

죽을지도 모른다는데  그 상황에 부풀려지는 신경이 시장기란 것은, 정말 어처구니없었다.

 

모두들 여권과 간단한 가방 한 개씩을 챙겨 가지고 오십시오!

 

오후 4시경 소집령을 받고 학교 강당에 모여 앉아 기다리던 우리들 앞에

무대에 올라 선 외국 회사 아시아 본부 사장의 발표였다.

 

숨죽인 채 듣느라 정적 같던 강당은 무슨 일인가 싶어 흥분으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