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친구야 /화우
14일,
안절부절... 집에서 입원 준비하구 있을 네 생각에 잡혀있다 보니
긴장 해서인지 내 침 삼키는 소리가 들을린다.
15일,
친구는 지금 쯤 입원수속을 하고 있을
내겐 14일 오후5시.
왜 이렇게 맘이 급해지는 건지
하이웨이를 달리는데 자꾸만 스피드를 내게 된다.
70 그리고 80mile.....
16일,
병원에서 환자복 입고 돌아다닐 널 상상해본다.
95년 일주일의 검사 끝에 선천성 심장병이라는것을 알았을 때,
판막도 안 좋고 심실 사이에 구멍이 있다는데도
수술 하겠다는 싸인을 하지 못하겠어서 미뤄만 오다,
감기가 한 달 씩 가고 열도 한 번 오르면 내리질 않아 병원에 가지
심내막염이 의심스럽다며 수술을 서두르자는 의사의 권유에
올 것이 왔다며 막다른 골목에 선 기분으로 싸.인 .했다던,
세월 좋아져 사흘 만에 모 종합병원에서의 수술 날짜를 받고는
무섭고 겁이 나 며칠 눈물로 지세웠다는 네 전화에,
아마도 하나님이 네게 더 좋은 것을 준비 하시느라
이 시간을 주시는 거라 생각하라 했던가,
사실 그러고 있는 나도 친구가 안됐어서 그저 눈물 났었다.
17일..
인터넷 세상이면 뭐해. 새삼... 내가 얼마나 바보인가를 알겠다.
전화번호 정리 제대루 해놓지 않으면 컴 없는 곳에선 도루묵인 걸..
여행 다니며 간단하게 챙겨다니는 가방 안 수첩에는
친구의 회사 번호와 핸드폰 번호만 적혀있어서
경과를 알려 달라던 그런 내 이메일을 받은 후 병원에 갔는지조차 알 길이 없다.
18일
전화기가 꺼져 있습니다.....
당연하게 그럴줄 짐작했으면서도 자꾸 같은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다.
지금 쯤 수술 끝나고 중환자실로 옮겨 갔을까....
친구를 생각하던 내 머릿속은
25년 전의 혜화동 고려대학 병원 수술실 앞으로 달려간다.
스무살 남동생이 악성 뇌종양으로 신부님께 대세(종부성사)까지 받고
수술실로 들어갈 때 의사는 이렇게 말했었다.
어차피 수술할 혹 말고도 혹이 3개나 더 있고
더구나 숨골 옆에 있는 것은 건들 수 없는 부위기도 해서
이 수술이 얼마나 더 생명을 연장시켜 줄 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하지 않으면 오늘도 넘기지 못할 것 같아 할 수 없이 들어가는 거라고,
그리고 수술을 빨리 끝내고 나올 수록 경과가 나쁜 것이고,
시간이 길어지면 가망이 있다는 신호라고,
하지만 깨어난다 해도 6개월 정도는 거의 대부분 식물인간으로 가족들 알아 보지 못하기 쉬우니
정상인이 될거라는 희망은 아예 갖지 않고 기다려야 마음도 덜 아플 거라고,
보호자가 원해서 들어가는 수술이지만
사실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어도, 말씀드렸듯 의사 책임은 아닌 거라고.
구구장장한 말을 들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던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그래도 좋으니 눈 뜨고 1년 만이라도 곁에 있다 가게 해달라고
스무살 어린 나이에 너무 갑작스레 데려가는 건 정말 너무 한 거라고,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환자 본인이 나중에 겪을 고통에 대해선 생각조차 않은....
오직 우리의 안타까움만을 생각한 결정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뇌수술에 가장 권위 있다는 의사 다섯 분을 모셔서 결정하고 수술에 들어갔다.
땀으로 흠뻑 젖고 후즐그레해져 수술실을 빠져 나오며
-혹 3개 중 하나는 제거 했습니다.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은 의사의 한 마디에 서로 얼싸 안았었다.
10시간 30분 만에 동생의 침대가 중환자실로 이동하려 수술실을 빠져나왔고
다른 곳도 아닌 머리를 드릴로 절단한 수술인지라,
온통 코와 눈 할 것 없이 경계선 없이 얼굴이 부어오른 모습이지만,
그저 생존이 아름답다는 생각 뿐이었다.
서로의 퉁퉁 부은 얼굴 쳐다보며 아무 것도 생각 나고 더 이상의 욕심두 없이
생명이 붙어 있다는 말 한마디에 그렇게 감사하고 그렇게 기쁘더라는 것을...
그 기분을 ㅕㄲ어보지 않은 이들은 알리 만무했다.
결국 지루하게 하루는 저물고...
때르릉... 새벽 0시3분
- 무.사.히.수.술.잘 끝났습니다. 집사람이 연락하라고 해서요.
막상 열어보니까 생각했던 것 보다 괜찮은 편이라
인공 판막을 사용하지 않고 치료 해도 될 것 같다고 했고
그래 내일이면 일반 병실로 옮겨 갈 것 같습니다...
- 고맙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하고 많은 말 놔두고 난, 이 말 밖에 한 기억이 없다.
전화 속 친구 남편의 아내의 수술 경과를 알려주던
흥분으로 가늘게 떨리던 그 음성 끝으로 다시... ....
- 한수야 ,괜찮니. 정신 들어? 누나 알아 보겠어?
중환자실로 달려가는 침대에 매달리다시피하며 일단 동생이
호흡을 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던 우리 가족들
한꺼번에 큰소리로 이것저것 물어대는데,
형체만 알겠을 동생의 얼굴 위로 답이라도 하듯 옅은 웃음이 번졌다.
배우로 첫 영화를 촬영 하던 중 쓰러질 당시의 그 긴 머리를 수술 들어가기 직전 전부 밀어내고 종부성사를 받은 동생의 손에 신부님은 묵주를 쥐어주셨었다.
모든 걸 맡기겠다는 체념이 가져다 준 평온한 모습으로 수술실로 향했었다.
그랬던 동생이 묵주 쥔 손을 살짝 들어 보여주는 거였다
아홉시간이 넘는 긴 수술을 하는 동안,
무의식 상태에서도 너무 꽉 쥐고 있어 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깨어 나더라도 6개월은 사람 알아보지 못할 거하고 그렇게 알고 준비하라던
의사와 간호원들도 눈이 휘둥그레지고...
- 와 ~~~ !.
..............
모르는 이들은 저렇게 아픈 환자를 보면서도
그것두 병원 복도에서 뭐가 좋다고 소릴 지르고 떠드는가 몰상식하다 했겠지만,
우리는 그때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으리만치 기쁘고 얼마나 감사하던지......
친구 남편의 수화기 속 음성 끝자락을 타고
내게 24년전 동생의 뇌종양 수술 실 밖에서 기다리던
그때와 유사한 기쁨이, 그 안도감이 싸아하게 전해져 왔다.
수술 날짜 받아놓고
신랑이(그 친구는 남편을 그렇게 부른다)어찌나 핼쓱해지는지
안쓰러워 못 봐주겠다던 걱정처럼
아내 곁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지켜주시느라 수고 하셨네요.
몇 번이고 속으로만 되뇌였다
친구야,
넌 내게 11월 들어 서서도 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다른 친구들한테 좀 알려 달라고 했었지만,수술이 잘 됐으니까, 그래 즐거워 해도 될 것 같으니까,
한 이틀이면 일반 병동으로 가고 일주일 후 정도면 반대 상황으로 병문안 온 친구들을 만나도 괜찮지 않을까 한다.
한국 아닌 미국에서 한국 친구들 연락을 맡아주길 바라는 친구.날 그정도로 생각하는데 난 참 못미쳤었구나.같은 하늘 아래가 아니라 미안하고 쾌유를 빈다.
* 뒷 이야기 : 24년 전 악성 뇌종양 수술을 받았던 남동생은 수술로는 혹 한 개 밖에 제거하지 못했으나,
방사선 치료 후 하나님의 힘으로 일어나 그때 편입한 카톨릭 대학을 졸업 후
동 대학의 강사, 성당 강의와 선교사 등으로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고 있으며,
심장수술을 했던 친구 또한 완쾌 되어 잘 살고 있습니다
2002.10
Today feels like...폴더의 # 이런 날도......,.http://blog.daum.net/hwawoo/981라는 글과 [관련글]로,
2002년 친구의 수술에 대해 적으며 1982년 동생의 일을 회상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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