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을 꿈꾸는 女子/ 화우 정혜정
자유라 불리는 것이 무엇이 되었든
뜨겁고 미끄러운 양수 속을 헤엄치듯, 지금 난, 즐기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위한 재발견이라도 해
세상을 향한 편견이 조금은 줄었다거나
도통 열릴 줄 모르던 안개같던 머릿속이
신 개념으로 차오르기 시작하는 바람직함은 아닌,.
그저, 원래 이러저러하던 나라는 여자가
커튼도 제치지 않고 환기도 되지 않은
방 안에서만 머무르던 오랜 습관을 버리기로 했다는 의미 정도이겠다
정말이에요. 결혼한 지 10년이 되었다니까요. 너무 오래 함께 살았어요.
믿기지 않겠지만, 내가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저이는, 밀리언에어였답니다. 그런데… ….
당신은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을 모아다 집 분위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군요?
집안을 둘러보던 내가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은 주제인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척 하며 조금은 무례하게 다른 말을 던졌지만,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 고마워요. 저 의자도 이 식탁도 모두 티제이맥스에서 사 온 거예요.
믿어져요? 그가 그의 패밀리 전 재산을 다 말아 먹었단 말이죠.
정말 이것들을 티제이 맥스에서 주웠단 말이에요?
참고로 티제이 맥스라는 가게는 백화점 같은 곳의 물건들 다운된 가격으로 가져다 놓고 파는 곳으로
안목만 있다면 얼마든지 만족스러운 것들을 구매할 수 있는 미국 전역에 체인점을 가지고 있는 패션 가게다.
다만 그릇이나 가구 종류는 코너 코너에 아주 조금씩
가구 같지 않게 혹은 그릇 같지 않게 널려 있곤 한데,
우리는 보통 그 가게에 널려져 있는 가구들을 진열 품 정도로 생각할 뿐 진짜 가구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코너 코너에 진열되어 있던 의자 하나, 책상 한 개를 주어다 아니 사다가,
집을 딱 맞는 가구를 들여 놓은듯 잘 꾸며 놓은 거였다
훌륭해요. 그리고 멋지네요.
이 다락방은 마치 작은 꿈의 궁전 같군요.
자다가 눈을 뜨면 머리 위로
별이 쏟아져 내릴 듯 보이겠어요.
고마워요. 하지만 저이를 보세요. 오늘 같은 날 저렇게 취해 있다니... ...
인생을 잘 살아보고 싶은 의욕이 없는 듯해요.
그와 지낸 10년이라는 세월을 정리하는데, 난 너무 오래 걸린 듯 해요.
하지만 그녀가 그 다락방에 누운 채 썬 루프를 통해 하늘을 바라볼 때는 작게 보일 지 몰라도
최소한,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다른 이들보다는 좀 더 자주 가깝고 뚜렷하게 바라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매일 방 침대에 누워 달빛 아래의 댄스를 꿈꾸며
이런저런 통로로 자신의 마음을 잠깐씩 외출 시키느라
그녀가 원하는 진정한 탈출에 대해서는 느적거렸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계속 묻지도 않은 말을 하던 그녀가 우리를 옆방으로 안내했다.
그녀가 그의 아이를 갖는 대신 키우고 있다는
새카맣고 윤기가 흐르는 기니아 피그가 소파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리려 먼저 손가락을
그의 코에 가까이 가져다 대며 각자의 체향을 소개하는데
그녀의 아들 같다는 JOHN이라는 기니아 피그는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는지 피하지 않고 얌전했다.
그 모습을 보던 그녀는 놈이 인정할 줄 알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하긴.....자신이 오줌을 싸고 있으면서도 그런 줄 모르는 것이 기니아 피그라는 놈인데
존은 얼마나 그녀의 사랑을 받았는지 보답이라도 하듯 똥오줌을 잘도 가리며
자신이 그렇게 대책 없는 동물은 아니라는듯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기니아 피그도 귀족처럼 키우는 독일계 미녀인 그녀에게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내가 딱히 해 줄 말이라는 건 없었다.
결혼 생활 10년이 매우 길었던 걸까.
아님 헤어지려고 마음 정하고 나니 생각 한 번 할 때 마다 그림자가 늘어지듯
새삼 세월이 길었었다고 느끼며 참아낸 것에 스스로 대견해 하는 중일까 ,
아님 단순하게, 10년의 세월을 접는데 걸리는 요즘의 몇 달이 길다는 의미일까…….
어쨌든 벗어려는 생각의 동기는
무의미한 생활로부터 벗어나 삶을 제대로 직시하고 싶다는 의지여야 할 것이다
그녀의 남편이 응접실에서 그의 친구들에게 술을 한 잔씩 권하고 있었으나 아무도 받지 않았다.
별다르게 술주정이라고 하는 것도 없지만 그가 비틀거리기 시작하자
모두 그가 따라주는 술을 받지 않겠다고 사양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 마디로, 배려하는 마음이 몸에 밴 친구들인듯 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술 취해 흔들며 돌아다닌다 거나 더 마시자고 붙잡거나
아무에게나 화를 내고 싸움을 걸 수 있는 상식 이하의 술주정꾼의 행동은 결코 일어날 수 없어보였다
성격이 깔끔한 그녀가 떠나는 우리에게 인사를 하려다
모아놓은 쓰레기 비닐을 들고 층계를 따라내려오며 내게 말했다.
다시 방문해 줄 거죠? 당신과 차 한 잔 나누며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갤러리를 보다가 친구의 친구 집이라고 올라가는 친구 따라 방문 하게 된 그녀의 집을,
오늘처럼 친구들에게 묻어서가 아닌 방문이라 불릴 방문으로
단 둘이서만 만나길 원한다는 거였다.
그녀를 봤고 그녀의 아들 기니아 피그가 어떻게 자란지도,
그리고 그녀의 남편도 만났으니 아마도 다음에 만나면 무언가 해줄 말이 있을 것이나,
오늘은 아니다.
제대로 된 말 피해 동문서답만을 하던 나를
다시 만나고 싶다며 몇 번이고 다짐하는 까닭이,
딱히 말로 나타낼 순 없었어도 그녀를 알아봐주는 내 눈길을 알아챘거나
그런 그녀 역시 나를 알아봤기 때문이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
정직하게 말해, 누구나 자신에 대해서만은 둔한 법이기에
나 또한 그녀에게 나의 무엇을 들춰 보여준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갤러리 위쪽에 작게 세 들어 살며 티 제이 맥스에서 사온 것들로도 그럴 듯하게 집을 꾸며놓고
조만간 다시 만날 그녀가 매일 탈출을 꿈꾸며 살아가는 ―
내가 관심 있게 본 이 작은 아파트의 한 달 렌트 비는 1,600불이라 했다.
이 동네 기준으로는 전혀 센 가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혼자 벌어서 남편과 생활 하기에는 벅차겟다며
헤어져 내려오던 층계를 거슬러 올라가듯
다시 한 번 그녀의 아파트를 올려다봤다.
/ 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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