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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렘이 이끄는 생 (詩와수필)/Like everyday life 1

낮잠

by HJC 2011. 4. 1.

 

 

 

 

 

 

 

 

 

 

                   낮잠

종일 아프다.아프다고 해야 할 지 마음을 상했다고 해야 할 지.

결국 어제 종일토록 무엇인가 맥 빠지고 힘들어

뉴욕에서 돌아온 그와 함께 가기로 한 부부동반 파티도 거르게 한 이 원인 모를 침잠은,

엊저녁에 걸려온 상대에 대한 배려도 경우도 없는 전화에 그 물고가 터지기라도 한 듯

그만 머리가 부서지는 듯 하고 심한 두통으로 잠을 설치고 말았다.

좋게 말해서는 듣지 않을 듯 해 집 앞으로 오겠다는 몇 번의 전화를 단호한 어투로 거절했음에도

밤 10시가 훨 넘은 시각 집 동네에 도착했으니 나오라는 전화가 왔다.

한 사람은 아는 동생, 또 다른 한 사람은 다른 시인들 모임에서 만난 적 있는 중견 시인으로

이 두 사람이 함께 술을 마시다 내 이야기가 나온 모양이지만

나오지 않겠느냐며 그들이 모인 장소인 분당에서 전화가 온 것은 7시 경이었다.

아프로는 해가 진 후에 결려 오는 전화는 받지 않겠다는 결심을 갖게 할 정도로  

그 이후 취기 오른 두 사람의 전화를 대응하는 일은 정말 짜증이 날 정도였다.

 

그러더니 결국 동네까지 와 전화를 걸어

너무 늦어서 그럴 수 없다는데도 타인의 가정생활에는 관심조차 없는 듯

정말 몸이 많이 아파 며칠 재 외출도 못하고 있는 내게

뇌를 다친 것이 아니라면 집앞까지 온 사람들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에

술 취했으니 그만들 집에 돌아가라며 다음 기회에 보자고 좋게 달래보았지만

그런 내 말은 자신들이 듣기 싫다며 계속 떼를 쓰는 거였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이러는 걸까.

교양까지는 바라지 않는다고 해도 어쩌면 이렇게 어긋난 행동을 그것도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인지.

평소 한 번이라도 내가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만나본 적 있고 그걸 알아서라면 상황은 다를 수도 있을까.

그래도 본인이 안된다면 안되어야 하는 것이거늘, 도대체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주말이면 북부캘리포니아에서 아이들도 들어와  이 한국 집에 온 가족이 모이게 될 텐데

즐거운 날 앞두고 왜 이런 쓸데없는 일로 마음을 상하게 되는지 속상해

한 두어 시간 쓰러지듯 자고 깨어나 그때부터는 거의 뜬눈으로 맞이한 아침, 

어젯밤의 느닷없는 전화에 온몸이 구타라도 당한 듯 수씨고 아프다.

 

 

아침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에 엊저녁부터 밤사이 벌어진 이야기를 하자,

그런 예의 없는 사람들이 있느냐며 분개한다.

그런데 긴 밤을 혼자서만 내내 속상하느라 이미 위안 받을 시간은 지나서인가,

덩그마니- 홀로인 시간보다 더 혼자 인듯

친구의 높은 음성은 마치 담 너머 남의 집 싸우는 소리처럼 멀기만하다.

 

그래서인지 눈 뜨면 먹기 시작할 정도로 잘 먹는 사람이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있자니

빈 식탁 위에 있는 지인이 보내준 약 병 세 개만이 나란히 눈에 잡힌다.

미뤄 놓고만 있던 사진을 정리하다말고 오직 그 약을 챙겨 먹기 위해서라며

야채 주스를 한 잔 마시는데 갑자기 졸음이 쏟아져오는 걸 견딜 수 없다.

 

난, 몸이 아플 것 같은 조짐이 있거나 기분 상하는 일이 생기면

만사 제쳐 놓고 이렇게 졸음이 쏟아지곤 하는데

의사 친구는 그것이 졸음이 아닌 저혈압인 사람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

두통으로 눈도 아프고 지쳐 잠시 그대로 기절하듯 잠자는 거라고 했다.
혈압에 대해 말하자면, 이삼십 대의 시절엔  주로 55~ 60을 넘지 않는 저혈압이었는데
신혼 초 그와 말다툼이라도 하는 날이면 기막히거나 미안하거나 둘 중 하나로
우선은 방으로 들어가 두어 시간 내쳐 자고 일어나는 게 다툼의 순서가 되곤 했던 걸 기억한다. 
모르면 마치 그 상황은 내가 삐져서 방에 들어가 이불 뒤집어쓰고 누운 걸거라고 짐작들 하겠지만, 
어처구니없게도 난 머리가 아픈 지 졸린 지조차 분간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참을 수 없이 졸려서 다툼도 미룬 채 잠에 빠지곤 하는 거였다.
거의  낮잠이라는 걸 자는 적 없는 여자가 약 두 시간 정도 자고 나면
다툼은 이미 그 동기가 옅어져 어영부영 끝나기 일쑤였다.
생각해보면 그래서 싸우는 게 제일 싫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지도 모르겠으나,
해야 할 시기에 자기주장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지나온 바보이기도 하다.

참고 견디다 생명의 위협까지 갔던 맹장 제거 수술 받을 적 생각도 난다.
미련하게 굴다 그로 인해 소장까지 심하게 감염되어 어느 만큼 절단을 해야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이 이야기는 그때 있었던 혈압에 관한 것이다.
미시간 주에 살던 1990년대 초였는데 어느 날 배 아픈 것을 참다 참다 결국 병원엘 가게 되었다.
외관으로도 직경 15센티도 넘는 에그 롤 크기만한 것이 오른쪽 옆구리 쪽으로 부풀어 올라 있었는데
진찰을 하던 의사가 다른 의사 서너 명을 불러 내 배 여기저기를 누르며 무엇인가 의논을 하는 듯 하더니

급기야는 “Are you crazy?" 욕 하듯 내게 화를 내는 거였다.
이 지경이 되도록 미련하게 군 나를 바라보며.
부어오른 모양새나 그때까지 참을 수 없는데 참은 것 하며 간단히 맹장일 것 같지는 않다며
colon cancer일 확률도 있으니 당장 수술 들어가야한다는 거였다.
말하자면 직장암이면 이미 늦을 대로 늦은 상태이고
맹장이면 그 미련함에 대해 있는대로 쥐어박아도 모자라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세미 종합병원인 그곳에서는 만약 일어날 곤란한 상황을 대비하기에는 부족하니 
수술은 의사 자신이 하되 다운타운의 큰 병원에서 하자며 그리로 내려오라고 지시를 하는 거였다.
그날 밤 11시로 긴급하게 잡힌 수술 스케줄에 난 그저 얼떨떨해 하기만 했는데,
그래도 겉보기에는 멀쩡했던 내 얼굴에 긴박감을 느낄 수 없던 그 역시, 
한 일주일 체해 배 아픈 듯 보이던 와이프가 심각해서 그날밤으로 수술을 받는데도 실감되지 않았던지
자신이 낮에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동안 누가 어린 두 아이를 봐 줄 것인가와
아이들과 함께 식사 해결을 직접하며 며칠 보내야 한다는 것만이 우선 가장 심난하더란다.
같은 날 밤 11시 20분 전 우리는 디트로이트 다운타운에 있는 포드 종합 병원 앞에 도착 했는데
그가 주차를 하는 동안  내가 혼자 병원 현관에 들어서자 그날 당번인 경비가 다가와 이 늦은 시각 어떻게 왔는가를 물었다.
수술 때문이라는 대답에 본인이 받는다는 말이냐며고개를 갸우뚱 하며 차트를 보다
담당과에 전화를 걸어 확인 하더니

놀란 얼굴로 달려와 괜찮다는 나를 구비되어있던 휠체어에
거의 강압적으로 앉힌 후 수술실로 향하는 거였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수술실로 들어갔고.
그날 그 수술 직전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나를 보며
환자 혈압이 42 밖에 되지 않는데 이 상태로 수술 들어가도 되겠느냐고

의사에게 외치던 수간호사의 음성을 마지막으로 내
의식은 가물가물 끊겼었다.
다행히 췌장암은 아니었고 맹장염으로 판명낫으나
단순하게 맹장염만이었다면 15분이면 끝날 수술을 3시간도 더 걸리게 받아야 했다.
정신이 들고나서야 소장을 8센티 정도나 절단 했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문제는 출산을 해도 이틀이면 쫓아내듯 퇴원시키는 미국 병원에서 7일 동안이나 입원 했었다.

난 그것이 그만큼 절대 안정을 요하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뭐 그리 중한 병이라고 이틀이면 나갈 줄 알았던 병원에 꼬박 7일이나 있어야 하는 거냐며,
그동안 아이들 머리는 누가 빗겨줄 것이며 프리스쿨은 누가 데리고 가고
어떻게 옷을 챙겨 입히겠나가 우선 걱정인 여자였다.
그러다 평소 자신의 일인 실험과 강의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그를 바라보며,
충분히 지저분하거나 촌스러워진 아이들이 보이는 듯 했다.
우선은 살아났기에 생긴 여유로 부려 본 짐작이지만,
훗날 돌아봐도 그때 그 상황에 그것을 걱정이라고 했다는 게 우습다.

아무튼, 젊을 적엔 그리도 제 아픈 것 말하지 않고 참는 미련을 있는 대로 다 떨었는데,
그 뒤 몇 번이고 그런 경우를 겪다보니, 어느 날 부턴가 이제는 그러지 말자며 절로 알게 되는 게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게는 내 상태를 알려주는 게이지로 두통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
그래 지금은 정상인 수준인 65정도로 올라간
혈압이 낮아서라기보다는 뭔지 모르게 두통이 인다고 생각되는 날은 꼼짝 하지 말자는
자신에게 내리는 티켓이라는 걸 발부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내게 획기적이라고 할 만큼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이 두 가지가 있다면
1년에 단 한 번도 코피가 나지 않는다는 것과 낮잠을 자지 않는다는 것인데.
오늘은 어제의 두통에 이어 낮잠까지 쏟아진다.

얼마 전 염증으로 인한 눈 수술 후 연중행사 같은 코피도 흘려 봤고,
급기야 두통으로 졸음이 쏟아져 잘 수밖에 없는  상황같은 낮잠까지 자게 되었다.
엄니가 먹을 것 보내신다는 전화에 겨우 힘들게 일어나 시간을 보니,
무려 세 시간이나 잔, 나로서는 정말 기록적인(?) 날이었다.
잘 자고난 것은 좋은데 그것 가지고는 모자랐던지 이번엔 목이 붓기 시작하는 게
어이없어 잠을 설치기도 했고 감기 기운으로 몸 상태도 좋지 않아서인지,
오랫만에 긴 낮잠을 자긴 잤음에도 아직 더 쉬라는 신호인 듯 하다.

차 한 잔 하며 생각하니 그래도 만에 하나 엊저녁 컨디션에도
전화 거절하지 못해 하는 수없이 밤외출이라도 했다면
그야말로 겨울 감기 신고식을 톡톡히 치루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많은 여자들이 아내로, 애 엄마로 살며,  혹사인 줄도 모르고 무리하다 제 몸 상하기 십상이다.
나도 조금 아픈 것을 참다 병을 키워 어깨를 많이 상하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각도이긴 했어도 마음만 먹었지 잘 실행되지 못해온
제 몸 먼저 위하는 일을 겨우 해낸 듯해 스스로 대견하기까지 했다.

조인스 블로그의 비공개로 닫아둔 폴더에 있는 글입니다.]
포스팅 정보  2008.12.12 01:54:55  조회 (2986) |추천(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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