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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렘이 이끄는 생 (詩와수필)/Like everyday life 1

너무 빨리 잊지 말기

by HJC 2012. 5. 26.

 

 

 

 

 

너무 빨리 잊지 말기

 

  

 

어쩌다 서랍에서 발견한 CD CASE 안에 들어있는 CD 안에 저장된 사진들이 궁금해졌다.

요즘 같으면 USB에 넣어 저장하고 그것도 모자라 테라라는 메모리 박스에 넣어 저장을 하지만,

불과 5,6 년 전까지 통용되던 사진을 CD에 저장하는 일조차 아주 오래된 옛날이야기로 느껴진다.

 

그래 그 중 한 장의 CD를 열어보니 솔뱅에 가서 찍은 위의 사진이 있었다.

아주 오래된 것도 아닌 이 CD 사진으로 인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것들이 고맙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문화를 따르지 못해 손해 보는 것들도 있다.

그 당시는 기껏해야 2 GB이면 큰 메모리였고 500GB 메모리 박스를 선물 받았을 적 크게 기뻐하던 것조차

그로부터 1년 정도 후였을 정도로 그런 부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난,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사진들을 한꺼번에 줄여서 저장하는 것이 참 잘하는 일이라 생각했었다.

 

그렇게 크기를 줄여서 만들어 놓은 CD가 10개도 넘는데 만일 제 크기 그대로 저장했다면 100개는 되었어야 할 분량을,

모두 다시는 확대 할 수 없게 축소해버린 셈이다.

물론 그 당시에도 사진을 전문적으로 하시던 분들은 몇 개를 사더라도 크기를 줄이지 않고 저장했다는 말도 듣지만,

미국에 있던 난 그렇게 사진을 버려놓고도 얼마 전까지 후회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엉뚱한 사진으로 웃으며 동시에 몇 년 전까지의 모든 사진들 사이즈 줄인 것에 다시 한 번 안타까움이 인다.

 

아주 까마득하게 정말 아주 까마득하게, 처음 이 사진을 봤을 때는 이게 누구지? 하며 

좀 과장 보태자면 사진 속 자신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을 정도로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거였다.

좀 지나서야 저 신 안에 발을 집어넣으며, 잠시 거인 왕국 이야기도 생각해 보고

내 발에 맞지 않은 신이라는 주제가 연결고리가 되는 이런저런 상황도 생각해 보며 재미있어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주로 평소 자신이 하는 행동이 아닌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는

그 기억이 뚜렷함에도 잊으려는 마음이 다분히 있다지만, 

평소 행동이 아닌 행동을 이렇듯 재미로 했을 땐 아예 까맣게 잊기도 하는가 보다.

하지만 왜 전혀 기억을 하지 안은 채 살았는지는 모르겠다.

아무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해도, 이 사진을 발견하기 전까지 그리고 다음, 그 다음에

솔뱅에 들려서도 단 한 번 내가 했던 행동을 기억조차 해본 적 없다는 것은 신기할 정도다.

  

종종 1년 만에 핸폰 모양이 날렵하게 바뀌던 1990년 즈음이 생각난다.

그때는 한국에서 아직 삐삐라는 것을 사용하던 시기였는데 의사 친구는 비상 시 절실하게 필요하다며 

미국에서 모토롤라 폰 한 개를 구입해 주면 좋겠다는 부탁을 했었다.

뭐, 내 도움 없이 급한 사람이 우물 판다고 알아서 구하긴 했다지만,

그 사실 보다는 그러던 그 친구가 내가 일본으로 이사를 가서 살다 다시 방문했을땐,

난 작은 폴더 타입의 핸드폰인데 본인 것은 덤정색에 무전기 타입이라며 이번에는 내것같은 보통 폴더 폰을 갖고 싶다고 했었다.

그런데 겨우 1년 반이 지난 어느 날 다시 한국에 오니, 부러워하던 이 친구 왈, 

"아니 뭐 그리 탱크 같은 폰을 들고 다녀? "

그러며 자신의 폴더타입의 날렵한 핸드폰을 흔들어 보이는 거였다.

분명 그 친구가 그까짓것을 가지고 자랑삼을 것은 아니었음을 안다.

그저 휙휙 바뀌는 문화에 맞춰 속력 내 달리느라

불과 1년 전 상황인데도 5년전 쯤의 일로 인지하는 것 같았다.

문화와 아무 상관없는 신발 모형에 발 넣어본 행동도 그 다음, 그리고 그 다음 같은 곳을 다시 가서도

단 한 번 그 기억이 떠오른 적이 없는 것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우린, 너무 많은 것들을 무더기로 잊어가며 사는 건 아닐까.

그러다 심지어 남의 마음을 다치게 하거나 곤란하게 했다는 걸 알면서도

어? 어어..하며 앞으로만 달리느라, 기회를 외면 하며 살고있는 건 아닐까.

 

그것들 중에는 필요 없는 것이어서 잊는 것도 많다고 생각되지만,

엄밀히 말해 모든 행동에는 상황이 따르고 이유가 있으며

말 역시 선택과 의지에 위한 것이므로 어느 하나도 그냥..이라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스스로에게 특별히 자신 돌아볼 시간을 줘야 한다고 본다.

지양하거나 지향해야 할 것을 알게 되는 것 전부가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깨닫게 되는 것이므로

너무 빨리 폐기처분하거나 새카맣게 잊고 지내진 말자는 거다.

 

메우 바쁘다. 자고 일어나 걷기 힘들 정도로 다리가 아프다. 등등은

모두가 피곤해서 나온 다른 표현으로, 요즘 내 입에 붙어 다니는 말들이다.

그 말 속에서 보이는 비여유는, 비단 몸만이 아닌 짬이 없어서 받게 되는 정신도 그러할 것이기에

아마도 그 점이 더 힘들다는 의미일 테지만,

자신이 지니게 될 여유라는 것은 스스로 돌아보는 시도에서 비롯될 것이기에 적절한 배합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 잠시 과거로 여행을 갔던 거고, 기억이 아닌 그때의 여유로 몸을 충전한다.

작게 줄여져 CD에 저장된 모습의 내가 들어있는,

없어졌어도 몰랐을 오늘에야 발견하게 된 옛날 사진에 고마움을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