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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렘이 이끄는 생 (詩와수필)/Like everyday life 1

우연이 겹친 날

by HJC 2011. 8. 22.

 

 

 

들어갈 때까지도 몰랐다.

플라워 샵 안을 통해 다시 밖에 마련된 공간으로 나가 앉으면서야

오래 전 누군가와 이곳에서 차를 마신 적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앞에 앉은 새로 알게 된 영문학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흥미로웠다.

스페인에서의 히피 생활, 독일에서 웨이터를 하며 지내던 젊은 시절의 경험은

무궁무진한 기억들이 봄볕 아래 제 각기 돋아난 새순들이

그들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듯, 여기저기서 꽃으로 피어났다.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셨던 나라 그리고 성별도 틀린 이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남자였다면 같은 행동 여러 번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만큼 파장이 비슷한 분이셨다.

 

그런데 이럴 수도 있는 걸까.

이 집이었지 아마도....정말 비슷한 것도 같은데?

점심을 먹으려고 들어간 곳은 예전 그 화원 찻집에 함께 갔었다던 

바로 그 친구와 함께 가서 땀까지 흘리며 먹던

매운 순두부를 팔던 바로 그 음식점이었다.

 

25년이 넘는 세월을 한국에 살지 않다보니

강남이고 잠실 롯데같은 장소는 아예 내 머릿속에는 존재하지 않던 곳이었다.

머리 큰 다음엔 공부도 되지 않는다는 말처럼

그래서 난 아직도 몇번을 다녀도 강남의 길을 잘 모르는,

아직은 길치로 사는 중이다.

 

 

 

이곳 화장실이 저 안쪽 아니던가요?

긴가민가하며 한국의 길…….특히 시내 레스토랑 같은 곳을 잘 모르는 내가

주문 받으러 온 여자가 내미는 메뉴판을 보며 확인 차 물었다.

하지만 점원이 아니라는 대답을 하기도 전,

내가 기억해 낸 곳은 이곳이 아닌 2층 국숫집이었다는 것을 알았고

 

조금 후 수저를 가져오지 않았다며 종업원을 부르려는 교수님을 제지하며

테이블 아래쪽을 더듬어 수저통 서랍을 열던 난,

다시 혼잣말을 한다.

그런데 내가 수저통이 테이블 아래 서랍으로 있다는 걸 어떻게 알겠어?

이것 봐. 맞잖아, 이 집. 이 집도 오긴 왔던 거야. 바로 이 자리였고,

그리고 그때에도 난 이 해물 순두부를 먹었었고…….

 

단, 앞에 앉은 분의 완전하게 익혀달라는 말 한마디가 더 붙었을 뿐,

내 기억은 똑같은 경로로 순두부를 주문하고, 수저를 챙기고 있는 거였다.

 

이 정도면, 어이없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찻집에서 가깝다고 해도 책에 적힌 경로를 따라 온 곳도 아닌데,

어찌 같은 동네 찻집에서 차 마시고, 같은 순두부 집에서 점심을 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것도 두 곳 모두 같은 자리에서.

 

살다보면 우연이고 인연을 붙이고 말고가 없는 경우에도

이처럼 같은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처럼, 정말 우연이라는 것은, 내 전생이든 이생이든

한 번 지나온 길을 다시 밟으며 일어나는 것 아닐까…….잠시, 생각에 빠진다.

 

 

 

  

교수님은 민요를 배우러 가야 한다고 했다.

7시 부턴데 아주 재미있다며 같이 가서 구경하지 않겠느냐 하시지만

곤란하다는 내 대답에 아직 시간이 조금 여의하다면

잠시 어디 좀 들렀다 헤어지자는 제안을 하신다.

민요 배우러 가는 것은 아니고 잠시는 괜찮기에 그렇게 하시자며 따라나서는데

그 말씀하시는 저곳이란 곳이 어디인가 여쭈며 교수님을 따르던 난

맙소사! 입을 다물지 못한다.

 

어떻게 한 사람과 전혀 다른 또 한 사람이 나와 함께 보내는 어느 날의 몇 시간이

이토록 같을 수 있단 말인가.

나로 인해서가 아님은 분명한데

도대체 두 사람에게 무슨 공통점이 있어  같은 선택을 하게된 것인지

연구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잠시 걷자시던 양재 천 주변은 조용하고도 아름다웠다.

아침이면 늘 만나게 되더라는 경보 하는 어느 그룹에 대해 이야기 하셨고

나는 일본 로코 아일랜드의 같은 만숀에 살던 외국 여자들과

아침 8시 20분이면 5킬로미터 되는 섬 주위를 내고 있는

황톳길을 경보로 걷던 이야기를 해드린다.

 

헤어질 때 본인 시집을 선물로 주셨는데,

돌아오는 차 안에서 몇 페이지를 읽다 보니 오랜만에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그 세월 그러한 시간을 다 거친 분이라

이렇게 맑은 글을 뽑아내신 거라는 생각이엇고

이리 좋은 분을 친구로 알게 되어 감사했다.

 

 

 

집에 돌아오니, 아는 이로부터의 소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 SANDALE WOOD구나!

 

포장을 뜯으며 전해오는 냄새로 바로 알 수 있었다.

소포 안의 간단한 편지엔 한국 사람들이 잘 좋아하지 않는 백단 향인데 어떨지 모르겠다고 적혀있지만,

바로 이 향의 포푸리를 미국 집 욕실이고 어디고 놓고 살던 사람이니 마음에 들지 않을리 없다.

빙그레 웃으며 인센스 받침도 함께 보내준 친구의 센스에 고마움을 느낀다.

침대 사이드 테이블에 놓은 신경을 이완시켜준다는 향을 맡으니 하루의 피로가 절로 풀려가는 것 같다.